중세기 소위 종교개혁의 불씨가 된「면죄부사건」의 경위는 이러하다.
당시 레오 10세(1513-1521)교황은 베드로가 죽은 바티깐 언덕의 성역화를 위해 언덕 위에 영원히 빛날 세계적인 성전을 짓기로 하고 모금운동을 전 세계교회에 호소했다. 그 모금방법으로 대사령을 발표했는데、교황이 발표한 대사령에는 대사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베드로 대성전 건립을 위한 헌금의 조성이 들어 있었다.
교회가 반포하는「대사」를 라띤어로는 Indulgentia라 하고 이것이 어원이 되어 영어의 Indulgence란 단어가 생겼고 그 본래의 뜻은「관대」「은사」「후하게 베풀어줌」의 뜻으로、이것을「대사령(大赦令)」이라고 번역해야 옳았는데 일부층에서 이 단어를「면죄부(免罪符)」라 번역하여 오해를 거듭하고 있다.
대사령을 통한 모금운동은 하등의 잘못이 있을 수 없다. 개신교에서도 교회를 짓기 위해서 모금운동을 하고있지 앟는가? 그리고 사목자들도 하느님의 은혜를 약속하고 십일조를 강요하는 사실과 대조해서 아무런 성서적인 오해도 있을 수 없다.
당시 반포된 대사조건에는,
1) 과거에 범한 죄를 참회하고 고백성사를 받아야 한다.
2) 적어도 지정된 일곱 성당을 순례하고 그리스도의 오상(五傷)을 묵상하는 뜻에서 주의 기도 성모송을 각각 다섯 차례씩 외우든지 시편 50편을 외워야 한다.
3)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비로 응분의 헌금을 해야 한다.
마지막 3항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천국은 부자나 빈자가 다같이 갈 수 있도록 공개되었으므로 즉 돈없는 빈자들은 헌금 대신에 기도나 단식으로 대사를 받을 수 있다」
이상이 소위 면죄부 사건의 진상이다. 그런데 실상 이것을 이용해서 일부 성직자들은 돈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었고 헌금증서를 마치 구원의 은혜인 것처럼 남발하기도 했다.
이때 루터가 속해있던 교구「비텐베르그」교구에서는 도미니꼬 소속 텟젤 신부가 교황청의 대사령을 신자들에게 선포하고 헌금받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 텟젤 신부는 사실 너무나 과격한 언사로 헌금을 강요했다. 이 강론을 들은 루터는 1517년 11월 1일「비텐베르그」성당문에 95개 조문의 반교회적인 내용을 붙혔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루터와 텟젤 신부 사이에는 논란이 벌어졌고、드디어 루터의 반가톨릭적인 논쟁으로 번져 교황의 권고도 무시하고 루터는 완전히 교회정신에서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루터는 계속 자기의 그릇된 사상을 대중 속에서 퍼뜨리고 교회와 교황에 대한 모략을 일삼았고 그는 벌써 그때부터 사제로서의 생활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성직계급마저 부정하면서 신품성사까지도 부정하게 되어 자신이 하느님께 맹세한 독신서원도 무시하고 드디어 25세의 수녀였던 가타리나와 결혼까지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