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관상수도회 「시토회」 기도ㆍ노동으로 이웃에 봉사

입력일 2011-05-27 14:30:07 수정일 2011-05-27 14:30:07 발행일 1983-06-19 제 1360호 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일본「천사의 성모 수도원」서 한국 진출 추진 중
새벽 3시경 기상…침묵 속에 생활
하루에 7번 기도…「품행개선」「정주」의 서원도
불「시토」서 1098년 성로베르토에 의해 창설
한국에 처음으로 시토會(Citeaux) 수도원 설립을 꿈꾸고 있는 일본 북해도 國館市에 있는 「천사의 성모 수도원」이 머지않은 장래에 마산 교구내에 수도원을 신설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제에 우리나라에 처음 진출하게 될 시토會(트라피스 틴)의 기원과 역사ㆍ현황ㆍ수도서원 및 생활 등을 알아본다.

시토회는 기도와 노동을 통해 하느님과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관상(觀想)수도회로 성베네딕또의 수도 규칙을 한층 완전하게 실행함으로써 초기의 정신으로 되돌아 가는 것을 목적으로 1098년 물레엠의 베네딕또회 아빠스 성 로베르토에 의해 프랑스「시토」라는 벌판에서 창설됐다. 창설시 지명에 연유해 시토회로 불리어지게 된 이 수도회는 성 베르나르드(1091~1153)의 활약으로 눈부신 발전을 했으며 1125년 3대 아빠스인 성 스떼파노 시절 베네딕또회 수녀들도 「타르」에 수도원을 세우고 시토회 수사들의 지도를 받아 수도 규칙을 충실히 실천하는 생활을 시작함으로써 시토회 수녀들의 생활이 처음 시작된 것이었다.

그 후 백 년 동안 시토회 수사 수녀들의 수가 급증, 유럽 전역에 수도원이 설립되고 12~13세기 전성기 때는 수도원 수가 1천8백 개에 달했다.

매년 아빠스 총회를 열어 상호간의 일치와 유대를 다지면서 초기의 정신을 충실히 이행해 나갔으나 전쟁, 부의 축적, 회칙 준수의 문란, 아빠스 총회와 순찰의 소홀 등으로 황금시대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개혁 시도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트라프라고 불리는 시토회 수도원의 드랑세(1626~1700) 아빠스가 엄격한 개혁을 단행했다. 이 트라프 수도원의 쇄신에 따라 시토회를 엄률(嚴律)시토회라고 부르고 또 그 발상지가 노르망디 지방 트라프(Trappe)였기 때문에 이 엄률 시토회 수사들을 트라피스트, 수녀들을 트라피스티 으로 부르게 됐다.

그 후 프랑스 혁명 때 트라프 수도원 수련장이었던 오구스틴 드레스트랑쥬(1754~ 1827)는 24명의 수사들을 이끌고 스위스로 피난해「발생트」(Val Sainte)에 수도원을 세웠으며 또 추방된 수녀들을 위해「하느님의 성지(聖旨)」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에도 혁명으로 인해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마침내는 러시아로 피해 박해의 거센 바람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그러다가 루이 18세가 즉위한 후 프랑스로 되돌아왔다.

현재 시토회 수도원은 전 세계에 분포돼 남자 수도원 89개 소여자 수도원 53개소에 달하며 희원수도 5천 명을 헤아린다.

고독과 침묵 속에서 기도하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기도하는 시토회 수녀원은 거룩한 전례, 특히 미사와 하루에 일곱 번의 성무일도를 바치고 영적 독서를 통해 하느님과 치밀한 내적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노동을 통해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참여하여 세속에서 일하는 사람과 그 노고를 나누려고 애쓰고 있다.

시토회 수녀들에게는 정결, 청빈, 순종의 서원이의 품행 개선과 정수(定住)의 서원이있다.

시토회 수도원에는 금역(봉쇄 구역)이 설정돼 있는데 이것은 단지 사회와의 격리만이 아닌, 지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떼놓고 오로지 「하느님의 차지, 기도하는 사람」이 될것을 상징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관상수도회의 가장 중요한 의무란 하루에 일곱 번의 기도를 바치는 일이다. 수녀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수녀들은 공동 기도 혹은 개인적인 기도를 한층 효과적으로 드리기 위해 독서를 하며 특히 성서 봉독과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침묵의 준수는 시토회 수도자들의 중요한 특징으로 간주되고 있다. 내적으로나 의적으로나 평정을 유지하여 하느님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쉽게 독서와 기도에 정신을 집중하여 수도자 전원의 영적 생활을 심화키 위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수녀들은 장상과 자유로이 얘기를 나눌 수 있지만 수녀들 상호간의 대화는 되도록 삼가하고 필요할 때 필요한 말만하게 되어 있다. 공동체적으로 한 달에 두서너 번 정도 대화의 시간을 가지고 있으나 테마는 주로 수도 생활에 관한 것들이다.

수녀들은 매일 몇 시간의 노동을 통해 서로 건강과 기능을 활용하여 책임을 분담함으로써 공동체 운영에 이바지하고 있다. 수녀들은 낙농이의 에버터 사탕이나 양과자를 만들고 겨울철에는 수예품 제작 하고 있다. 트라피스틴의 모토「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에 충실하는 수녀들은 노동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세상에 증거하는 자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시토회 수녀들은 청결ㆍ청빈ㆍ순종의 서원의 품행 개선의 서원을 통해 매일 모든 면에서 덕행의 향상에 힘쓸 것을 하느님께 서약한다. 그리고 수녀들은 정주의 서원에 따라 새 수도원의 창설ㆍ국민으로서 특정의 누이행ㆍ양친의 위독 상태ㆍ신병 치료 등 특별한 목적 이외에 수도원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수녀들의 수도 생활 일과는 새벽 3시30분에 기상하여 3시50분부터 밤기도ㆍ묵상ㆍ삼종기도를 바치며 5시30분에 아침 기도ㆍ창미사를 봉헌한 뒤 아침 식사 후 8시5분부터 11시15분 육시과ㆍ성찰ㆍ삼종기도를 드린다. 오후 1시15분 구시과ㆍ작업을 하며 5시 저녁기도ㆍ묵상을 한 뒤 저녁 식사 후 6시55부터 끝기도의 독서ㆍ끝기도ㆍ성모 찬가ㆍ삼종기도를 드린 후 7시45분에 취침한다.

우리나라에 진출하게 될 일본 천사의 성모 트라피스린 수도원은 1898년 國館市에서 창설됐는데 당시 國館敎區長 베를리오즈 주교의 도움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896년 10월 북해도 지방 전교를 위해 上磯ㆍ三石에 남자 수도원이 창설되고 1년 수개월 후 上湯川에 여자 수도원이 설립됐다. 이 수도원은 1898년 4월 30일 프랑스 우베크市에있는 트라피스틴 수도원에서 8명의 수녀가 파견돼 수도 생활을 시작,「천사의 성모」수도원을 설립했다. 그 후 회원 수가 1백20명 가까이 늘어나 1935년 兵庫絲加古川 에 약30명의 수녀를 파견,「西宮의 성모」수도원을 설립하고 1953년에는 臨建絲豈津 에 20명의 수녀를 보내 「伊萬里의 성모」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1954년 西宮의 수도원도 板木縣那須「나스의 성모」수도원을 설립하고 1981년 12월 宮古島에 새 수도원을 설립했다.

한편 上磯ㆍ三石의 날자트라피스트 수도원도 1980년7월 大分縣日出町에 새 수도원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