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SOS 어린이마을, 이 프란치스까 여사 회갑연

입력일 2011-05-10 14:23:05 수정일 2011-05-10 14:23:05 발행일 1982-05-16 제 1305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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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의「기른정」에 보은의 큰절
20년을 한결같이 고아들 뒷바라지
연지ㆍ곤지 주름진 얼굴엔 감격의 눈물
3백여 자녀들 가이없는 은혜에 감사
대구이어 서울ㆍ순천에 SOS마을 설립
자신을 길러준 어머님께 보은 하는 감사와 위로의 큰 잔치였다.

생모가 버린 천애 고아를 깊은 사랑과 보살핌을 쏟아 훌륭히 키워 이 사회에서 꿋꿋이 살아갈 수 있도록 길러준「생명의 은인」이자「고아들의 어머니」께 바치는 자녀들의 갸륵한 마음들이 마침 내는 평소 그토록 강인했던 그 어머니의 심중에서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펑펑 솟아나게 했다. 벽안의 노안에 감격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난 9일 오후 대구 SOS 어린이 마을에서 대구대교구장이며 SOS어린이마을 이사장인 서정길 대주교를 비롯 세계 SOS어린이마을 총재 헤르만 그마이너 박사와 그 일행, 대구 부시장, 본사사장 전달출 신부를 포함한 5백여 명의 마을 이사, 후원 회원, 직원 및 마을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풀어진 李 프란치스까 여사(한국 SOS 어린이 마을 총재)의 회갑연은 3백여 자녀들이 올리는 큰 절을 받는데만 무려 두시간이 소요치되는 마을 최초의 대축제였다.

이날 회갑연은 오후 3시가 조금지나 프란치스까 여사가 원삼을 예쁘게 차려입고 양볼과 이마에 곤지와 연지를 찍고 족두리를 쓰고 마을내 유치원에 마련된 식장에 박수 갈채를 받으며 입장, 교자상 중앙에 좌정함으로써 시작됐다. 상의 좌측에 서정길 대주교가, 그리고 우측에는 그마이너 박사가 자리를 함께했다.

곧이어 아래 위로 진홍색 한복을 차려 입은 이 마을 소녀들로 구성된「무지개 소녀 합창단」이「어머님 은혜」를 합창하자 식장은 엄숙한 분위기로 바뀌어갔다. 이어 프란치스까여사의 약력 소개가 있은 후 서 대주교는 축하 인사말을 통해 프란치스까 여사가『초창기에 한국의 풍습이나 언어등을 익히는데 특히 많은 고생 들을 했다』고 술회하면서『뭣보다 그는 주의 사랑에 뛰어난 정신으로 이처럼 수백명의 자녀를 길러 내는 훌륭한 일을 해오고 있다』고 치하했다.

그마이너 총재는 축사를 통해『이 세상은 마더 데레사나 프란치스까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우리는 프란치스까 여사가 이 세상에 태어난것을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까 여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오직 감사하다는 말뿐 달리 할 말이 없다』고 목메인 소리로 입을 열고는『독신자로서 선행을 하길 늘 소망했던 저의 부모님과 한국에 나와 일할 수 있게해 준 서 대주교님과 하 마리아, 그리고 뭣보다 이 마을을 설립해 준 그마이너 박사께 특히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한국에 못왔으면 회갑도 못지낼 것』이라고 애써 웃음을 보이며 마음을 진정하면서 그 동안 20년 가까이『외국인으로서 저지르게 된 많은 실수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이해해 주길 빈다』고 말했다.

이어 대구마을 15세대 가족이 첫째 집부터 차례로 전 가족을 이끌고 나와 큰절과 술잔을 올리며 만수무강을 기원했으며 이어 이마을에서 출가해 지금은 훌륭한 사회인들로 살아가고 있는 자녀들이 지난 날 자기들을 키우며 겪었던 숱한 고생과 어려움 등을 위로했다. 큰 절이 계속되는 동안 프란치스까 여사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곧바로 앉아 마을 어머니들과 자녀들이 올리는 술잔을 들며 상기된 얼굴로 감회에 젖기도 했다.

두시간 반에 걸친 회갑연이 끝난 후에는 출가한 자녀들이 프란치스까 여사를 모형 가마에 태워 차례로 각가정을 방문, 축하를 받으며 회갑연은 최고조에 달했다.

한편 회갑연에 앞서 이 날 오후 2시부터는 SOS어린이마을 어머니로 일하다 은퇴한 어머니들을 위한 집 2개 동이 준공됐는데 이중 한 집이 프란치스까 여사의 회갑을 기념해「프란치스까 레마이어 집」으로 명명됐다. 이 날 준공식에서는 어머니 5명과 남자 직원 2명에게 SOS어린이마을 반지가 그마이너 총재로 부터 수여됐으며 10년 이상 근속자 9명에게 프란치스까 총재의 공로패가 주어졌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프린치스까 여사는 한국 사회업 연합회 대구시설 연합회로부터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 오전 9시에는 동촌 성당에서 회갑축하 미사가 그마이너 총재 일행과 마을 전 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허연구 신부 주례로 봉헌되기도 했다.

1922년 2월 20일 이태리 볼사노 믹켈시「애판」에서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프란치스까 여사는 8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그 때부터 아버지와 동생 5명의 뒷바라지를 하며 자라났다.

그후 1950년 교회사업 여자전문학교 3년을 졸업, 1962년 11월 한국에 입국한 후 1968년 6월 한국SOS어린이마을 이사 및 원장으로 취임했으며 1981년 5월에는 대구에 이어 서울과 순천에도 SOS마을이 설립됨으로써 한국 SOS 어린이 마을 총재로 취임 했으며 지난 5월 4일에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