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복지사회 건설 앞장서는 신협 20년 발자취와 현황을 알아본다

입력일 2011-05-03 14:42:22 수정일 2025-07-11 09:35:20 발행일 1981-02-22 제 1243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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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교육통해 조직적 활동펴 
작년말 저축액은 2천여 억 원-84년목표 7천 억 
부산서 「성가조합」조직. 현재 1천4백개로 증가 
교회정신 구현에도 앞장
한국신협은 꾸준한 지도자교육을 통해 조직적 활동을 펴고 있다. (사진은 신협 지도자 교육 장면)

한국의 신용협동조합이 지난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했다. 60년 5월 1일 부산 메리놀수녀회 병원내 「나자렛의 집」에서 첫 한국신용 협동조합으로 「성가(聖家) 신용조합」 이 조직된 이래 그동안 신협은 신장을 거듭, 지난해 11월말 현재 저축액은 2천억 원을 돌파하였고 1천4백96개 단위조합에 조합원수는 81만3천1백72명이 되었다. 가톨릭이 주도하여 순수한 민간 협동조합운동으로 한국신용 협동조합 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성년(成年) 신협의 발전과정과 현황을 간추려본다.

한국에 있어서 신용협동 조합운동은 레지오 마리애가 유입되듯이 부산과 서울 두곳에서 거의 동시에 시작됐다.

「한국신협 운동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메리놀 수녀회 메리 가별 수녀(미국인)는 1930년 선교사로 내한. 활동하다가 6ㆍ25동란으로 일시귀국하여 신협운동을 공부하고 58년 1월 다시 내한、신협운동에 온정열을 쏟았다.

6ㆍ25동란후 전후 복구사업이 활발한 가운데 경제사회적 문제해결에 기여하려는 가별 수녀는 나자렛의 집에서 59년 2월 제1차 자발적 협동조합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2년간의 노력끝에 60년 3월 19일부터 4월 30일까지 7주간 동안 매주 이틀간씩 국제신협 연합회 교도로부터 지원을 받아 30여 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메리놀 병원 종업원、가톨릭 구제회 종업원、성분도병원、강습회 수료자 등을 공동유대로 성가조합이 창립됐다.

60년 5월 1일 성가조합은 27명의 조합원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 메리놀 병원에서 김남수 신부(現수원교구장)의 집전미사에 이어 창립총회를 개최、한국에서 첫신협 단위조합으로 탄생했다.

이날 총회에서 모여진 출자금 총액은 3쳔4백환 이었으며 이사장에 강정렬씨 부이사장에 김익균ㆍ구 조안나씨를 선출. 메리놀 병원구내「나자렛의 집」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한편 부산에서 메리 가별 수녀가 신협운동을 위한 준비를 하고있을 무렵 서울에서는 장대익 신부(서울 상도동 본당 주임)가 가톨릭 내 협동 경제연구회(회장ㆍ김동호)와 자연스럽게 연결. 60년 5월 14일 서울교구청 회의실에서 신협설립을 위한 준비모임을 갖고 서울시내 본당회장WKD 23명을 발기인으로 하여 60년 6월 26일 계성여중 음악실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조합원 80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창립총회에서 탄생된「가톨릭 중앙조합」은 경향빌딩 501호실에 사무실을 개설、서울시내 전지역 가톨릭 신자를 공동유대로 업무를 개시했다.

서울에서 부산성가조합보다 약 2개월후 가톨릭 중앙조합을 조직한 장대익 신부는 1956년 카나다에 유학、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신협운동을 공부한후 가톨릭 중앙조합을 창립하기전 59년 9월 경향빌딩 501호실에서 서울ㆍ인천 등지의 가톨릭 지도자들에게 신협운동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같이 한국의 신용협동조합은 부산과 서울에서 가톨릭 수도자와 성직자에 의해 소개되고 조직되었으며、부산과 서울에서 교구장들의 적그적인 협조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복지사회건설 이라는 신협의 지상목표와 「자조ㆍ자립ㆍ협동」의 신협정신과 가톨릭정신이 부합. 신협은 본당 및 교회기관 단체를 통해 뻗어나가기 시작、오늘날 가톨릭에서 주도한 사회운동 중 가장 뛰어난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60년에 창설돤 신협은 4ㆍ19와 5ㆍ16등 연이은 정세변동에 따라 새로운 운동의 유효성 여부에 따른 관망등 여러요인으로 초기에는 급격한 신장은 없었다.

여기에다가 지도자의 빈곤은 새로운 운동을 알리는데 가장 절실한 어려움이었다.

지도자 양성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임을 파악한 가별수녀는 62년 2월 메리놀 수녀회 「나자렛의 집」에 협동조합 교도봉사회(現협동교육연구원)를 설립. 초대원장에 취임、신협운동을 조직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교도봉사회의 교도원으로 활야한 이들과 교도봉사회 주최 강습회 수료자들이 현재 신협을 이끌어나가는 중추역할을 하고있어 가별 수녀의 노력은 적중된 셈이다.

협동조합교도 봉사회의 노력으로 신협조직은 활기를 띄기시작、경남에서 단위조합수가 늘어나면서 신규조합에 대한 엄무지도의 필요성이 증대、62년 9월 7일 9개 조합대의원 18명 중 14명이 참석한 가운데 「나자렛의 집」에서 경상남도지부 설립 창립총회가 열렸다.

경남지부 설립에 이어 이듬해인 63년 10월 서울지부가 설립되면서 가별수녀의 제안에 따라 64년 1월 연합회정관 기초위원이 위척되고 4월 26일 서강대학교 301호 강의실에서 노기남 대주교를 비롯 국제신협연합회 아세아지역 지도책임자 켄트씨 부처 등이 참석한 가운데 63명의 대의원 중 51명의 대의원이 참석. 연합회 창립총회를 개최、신협운동은 정착기에 접어들었다.

연합회 창립 이듬해인 65년 5월 14일에는 세계 신협협회에 가입、세계속의 신협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으며ㅡ72년 8월 17일 신협법이 제정 공포돼 신협운동은 성장국면으로 들어섰다.

71년 4월 24일 서울에서 한국, 자유중국, 일본, 필리핀, 월남, 태국,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대표단으로 아시아지역 신협연합회를 조직、한국 신협연합회내에 사무국을 두고 있어 아시아 지역에서 차지하는 한국신협의 비중은 절대적이어서 78년말 현재 통계에 따르면 단위조합수 40%, 조합원수 63%, 총자산 74%를 한국 신협이 차지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독일 미제레올 재단은 73년 연합회회관 건물지원에 이어 80년 8월기공한 신협연수원 건립에 5억 원을 지원、한국신협발전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단체이다.

「성년신협은」은 지난해 저축액 2쳔억 원을 돌파. 신협발전 5개년 계획이 끝나는 84년에는 저축목표액 7천억 원이 무난히 초과달성될 전망으로 있어 서민이 경제생활 안정에 이바지한다는 신협운동의 목표달성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79년 3월 말 현재 8백44개 인가조합중 1백 81개조합이 가톨릭신자 공동유대 조합으로 전체의 22%를 차지하고 있으며 출범한 가톨릭 조합중 70%가 지역사회 공동유대조합으로 발전. 지역사회에서 가톨릭 정신을 구현하는데도 크게 기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