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가 힘들고 고되다, 하루에도 몇번이고 죽고싶다는 말들을 입버릇 처럼 한다.
그렇다고 살기가 지루하리만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상사가 마치 불평으로 시작되어 불평으로 끝나는것같다.
이런 불평스럽고 짜증스런 인간사이지만 막상 종극의 죽음앞에 이르러서는 생의1분초의 촌극을 초월하지 못하면서도 입버릇처럼 죽고싶다고들한다.
그러면서도 살기위해 모두들 바쁘게 쫓고 쫓기우며 살아간다.
분한사람은 부한대로, 가난한사람은 가난한대로 걱정과 근심을 안고.
며칠전 나환자촌을 다녀온 S자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문드러진 육신의 아픈고통속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얼굴들이 밝고 평화롭게 보일수가 없더라고 했다.
그전화를 받고 나는 한동안 깊은생각에 잠겼다.
얼마전 수억대의 재산을 갖고도 허탈과 비애를 참지못하여 끝내 마약중독자가 되어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로 끝났다는 l씨의 우울하고 답답한 하소연을 들은 것이 있다.
그 죽지목하여 살아가는 딱한 l씨와, 비록 병든 육신이지만 밝게 푸르름을 만끽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천형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묵묵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자세는 정말 많은 것을 묵상하게 했다.
그들의 지혜와 그들의 현명한 판단과 생활철학은 비록 육신이 곪아문드러지더라도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었고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면 육신의 아픈고통속에서도 아픈줄 모르고, 비참한 몰골이면서도 부끄럽지않는 떳떳한 생활자세로 어느것하나 부러울것없는 마음의 부를 재원으로 갖고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은 빛이 서려 광채를 발하고 썩어가는 육신의 악취대신 성총의 향기를 물씬풍겨주는 성스러움을 상대에게 주기때문이다.
만족이란 어떤 물질적인 부에 기준된 것이 아니고보면 결국 모든지위와 재산을 모우고도 스스로 절박한 죽음에 까지 이르게한 그 무서운 공포의 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에게 일시적 만족을 주는 물질이란 일순에 머물렀다 없어지는 허무의 되새김질뿐, 그어떤 영원한 행복을 제공하지 않는것같다.
그래서 요사스런 마음안에 행복도 불행도 함께 있고보면 지옥과 천국의 차이도 우리의 마음안에 내재되어 있는 생활자세에 있다고 본다.
결국 얼마만큼 참되게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느냐에따라.
지금까지 서울대교구 당산동본당주임 朱尙培 신부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朴松竹 詩人께서 집필해주시겠습니다. <편집자 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