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다시 찾은 ‘주님의 기도’, 철거에서 새 기도문 설치까지

이승환 기자
입력일 2009-09-29 05:10:00 수정일 2009-09-29 05:10:00 발행일 2009-10-04 제 266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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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낸 옛 기도문은 어디에
“파손·마모 이유” 타당성 적어 
일방적 교체도 납득할 수 없어 
철거 비문 보관 여부도 불투명
예루살렘 올리브 동산에 위치한 ‘주님의 기도 성당’ 전경. 성당 내에는 150개 국의 언어로 적힌 주님의 기도문이 걸려 있어 세계 각국 순례자들이 꼭 한번씩 들러 기도를 봉헌하는 성지다.
이제는 예루살렘 주님의 기도 성당을 찾아 우리말 가톨릭 기도문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게 됐다. 지난 1년여 개신교 기도문을 보며 아팠던 마음도 조금은 치유될 듯하다. 하지만 40여 년 전 우리말 주님의 기도문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한 고위성직자가 봉헌했던 유서 깊은 기도문은 사라졌다. 그 위치에는 아직도 개신교 기도문이 자리하고 있다. 고(故) 최재선 주교가 봉헌한 우리말 기도문의 철거와 새 기도문 설치에 이르는 일련의 경과를 알아본다.

고 최재선 주교가 첫 봉헌

최재선 주교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뒤 귀국길에 이스라엘을 순례했다. 당시 주님의 기도 성당을 방문한 최 주교는 다양한 국적의 언어로 된 기도문 중 유독 한글로 된 기도문이 없는 것을 보고 귀국 후 바로 우리말 주님의 기도문을 성당에 기증했다. 이 기도문은 수도원 성당으로 들어가는 회랑 우측에 다른 기도문과 함께 걸렸다. 이후 이스라엘을 순례하는 많은 신자들은 주님의 기도 성당을 방문해 우리말 기도문이 걸려 있는 것을 보며 기쁨의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이후 천주교 뿐 아니라 개신교 신자가 내놓은 이스라엘 관련 책자와 영상물에서도 최 주교가 봉헌한 우리말 기도문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철거

지난해 말 가톨릭 기도문이 철거되고, 개신교 기도문이 설치됐다. 기도문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접한 작은형제회 김상원 신부는 곧바로 수녀원을 방문해 항의했다. 카르멜 수녀원 원장과 담당자는 가톨릭 주님의 기도문이 마모되어 교체가 필요한 시기에 개신교 목사가 요청을 했고 또 교회일치 차원에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기에 개신교 주님의 기도문을 붙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수녀원측의 해명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김 신부는 지적한다. 김 신부는 “기도문은 교체를 필요로 할 정도로 파손되지 않았으며 도자기처럼 타일 위에 글을 써서 구워낸 것이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다고 마모되거나 보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올 1월 휴가차 한국에 들어온 김 신부는 부산교구를 찾아 일련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이 건에 대한 위임을 받았다. 부산교구는 주님의 기도문 원상 복구를 바라는 공문을 예루살렘 총대주교 등 주님의 기도 성당과 관련된 기관에 발송했다. 공문에 대한 답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의 전쟁으로 한 달이 지난 2월 9일에 도착했다. ‘원래대로 복구될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답변이 있은 후에도 기도문은 곧바로 교체되지 않았다. 김 신부는 부산교구의 허락을 받아 1997년 개정된 주님의 기도문을 새로 디자인해 카르멜 수녀회에 넘겼지만 기도문이 설치됐다는 소식은 몇 달이 지나도 들을 수 없었다.

가톨릭 기도문 재설치됐지만

가톨릭 기도문을 봉헌한 한국 교회의 의사는 무시한 채 개신교 목사의 말만 듣고 기도문을 교체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에 대한 해명이 이치에 맞지 않아 더욱 그렇다. 이미 철거한 옛 기도문(최재선 주교 봉헌 기도문) 원본이 보관돼 있는지, 혹은 철거과정에서 훼손됐는지에 대한 답변도 없다.

새로 설치된 기도문에서도 문제는 드러난다. ‘원래대로 복구될 것’이라는 답변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개신교 기도문은 그대로 자리한 채 가톨릭 기도문만 다른 자리로 옮겨졌다. 뿐만 아니라 카르멜 수녀회는 부산교구 승인 하에 김 신부가 새롭게 디자인한 기도문(1997년 개정 기도문, 궁서체)을 전해 받았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독자적으로 기도문을 만들었다. 기도문을 철거한 ‘처음부터’ 새롭게 설치한 ‘끝까지’ 한국 교회의 의견을 듣지도 수용하지도 않았다.

김 신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치고 귀국하시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셨던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님의 염원이 성취되길 기도한다”며 “가톨릭 기도문이 원래의 그 자리에 되돌려 놓아 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 주님의 기도 성당은?

주님의 기도 성당은 예수님의 성지 예루살렘 올리브 동산에 자리하고 있다. 카르멜 수녀회 중 개혁 그룹에 속하는 ‘맨발의 카르멜 수녀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던 장소로, 십자군 시대부터 순례자들이 반드시 순례하던 유서깊은 장소다. 1868년 프랑스의 아우렐리아 공주가 이 땅을 매입, 프랑스에 헌납했고 1875년에 성당과 카르멜 수녀원이 지어졌다. 성당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의 기도를 알려준 동굴이 보존돼 있다.

150개 국의 언어로 적힌 주님의 기도문이 수녀원 회랑에 걸려 있어 세계 각국 순례자들이 꼭 한번씩 들러 기도를 봉헌하는 곳이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