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군종사제가 쓰는 병영일기] 깔깔이 신부

입력일 2007-11-18 10:20:00 수정일 2007-11-18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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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은 명예·자존심

신형 특전복!

제가 있는 특전사에는 작년부터 새 옷이 보급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애용되어 오던 얼룩무늬 전투복 대신에 최신식 디지털 무늬를 사용한 특전사 만의 옷입니다.

단추 대신에 ‘찍찍이’(벨크로)가 사용되었고 바지 단을 줄여 매는 번거로운 링밴드를 안 쓰도록 바지 단에 고무줄이 들어간 옷입니다.

거기다 색상도 푸른색 보다는 모래색이라는 짙은 회갈색의 제법 세련된 옷입니다.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너나없이 힐끗거리고 용감한 아저씨들은 ‘이게 무슨 옷이냐?’ 묻곤 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검은 베레에 공수마크까지 보여주면 말 다한 거지요. 군인들에게 옷은 단순한 계절 막이가 아니라 명예요 자존심입니다.

군대에서는 옷을 공짜로 줍니다. 90년대 초에 강원도에서 병 생활 하던 때, 밖에 나가면 볼품 안 날게 뻔한 데도, 휴가 한 번 나가기 위해 다리미로 번들거리도록 군복을 다리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 제일 마음에 드는 군대 옷을 고르라면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깔깔이’를 꼽을 겁니다. 누런색에 나일론 솜을 누빈 옷으로 군대 의복용어로는 ‘방상내피’에 해당합니다.

단벌신사 말년 병장

깔깔이~.

말년 병장들에게 깔깔이는 군복의 전부입니다.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잠자리에 드는 그 순간까지 누런 깔깔이를 입고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떨어지는 낙엽에도 공포를 느끼는 단벌신사 말년 병장의 특권이었지요. 실제로 깔깔이는 입어 보면 가볍고 따뜻한 게 그만이랍니다.

두 번째로 군에 와서도 깔깔이는 저를 배신하지 않고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답니다. 전방 부대에 가서 미사를 할 때였습니다.

공소 건물이 없어서, 목사님께 교회 건물 같이 쓰자고 했다가 깨끗이 거절당하고는 궁여지책으로 구한 게 병사들 식당이었습니다. 40명 정도 모이는 병사들과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은 막사랑 멀찍이 떨어져 있는 식당이 최고였지요. 일단 여름이 대단한 고역입니다.

아무리 병사들이 쓸고 닦고 한다지만 건물 전체에 꽉 배인 ‘짬밥(군대밥?)’ 냄새는 가히 환상적(?)이지요. 같이 동행하는 수녀님이 참고 웃으시는 것으로 감사할 뿐이랍니다.

실내는 얼음골

그렇다고 겨울이 만만한 것도 아닙니다. 해만 떨어지면 영하권 저 바닥으로 기온이 내려가지만 온풍기를 틀면 너무 시끄러워서 미사가 안 됩니다.

결국은 미사 직전에 온풍기를 끄게 되고 10여분 만에 실내는 얼음골이 되고 맙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대책 없이 미사를 드리다가 등이 시려 혼이 났지요. 그러다가 꾀를 부린 게 병사들이 속에 입고 있는 ‘깔깔이’였습니다.

가급적이면 갓 전입 온 신병을 지목합니다. 고참들은 애원해도 안 됩니다. 먼저 제 외투를 벗어 들고는 “어이 신병!” “이병 000!” “나랑 옷 좀 바꿔 입자~, 이건 네가 입고 깔깔이 좀 벗어 주라~.” “예?….”

군에서 나온 보급품만 사용 가능한 군인이 그것도 전입 신병이 ‘일반 사회의 옷’(군대말로 사제 옷)을 입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요. 어쩔 줄 몰라 하는 신병에게 답답한 고참들이 “신부님께서 시키시잖아!” 하면 그제야 쑥스러워하며 저랑 옷을 바꿔 입습니다.

병사들의 노랫소리

미사 드리는 내내 약간의 땀 냄새는 감수해야 하지만 저는 금방 보급 받은 솜이 그대로 살아있는 신병의 깔깔이를 입고 따뜻해하고, 막내는 제 ‘사제 외투’를 입고 사회에서 놀던 시절을 떠올리고…. 아무튼 전방에서 병사들 노래 소리 하나 만큼은 식당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우렁찼답니다.

살가죽처럼 깔깔이를 입고 뒹구는 말년 병장에서 이등병이랑 옷 바꿔 입는 깔깔이 신부까지. 오늘도 군대에서는 다 똑같은 붕어빵 같은 옷이지만 나름대로 추억과 그리움을 쌓아간답니다.

오정형 신부(군종교구 성 레오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