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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느림의 기도’ / 이주연

이주연(인천지사장)
입력일 2001-07-08 12:50:00 수정일 2001-07-08 12:50:00 발행일 2001-07-08 제 225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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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발간된지 2주만에 비소설 부문 베스트 셀러 1위로 뛰어오르면서 일년 내내 1 2위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허둥지둥 바쁘게 움직이는 생활에서 결연히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책이다.

숨가쁘게 하루 하루를 넘기며 사는 일상의 생활에서 제목 만으로도 무언가 여유를 갖게 해주는 이 책은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이나 거세게 휘몰아치는 회오리 바람 속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리듬을 잃지 않는 것이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임을 일러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되풀이 되는 「하루」의 분주함이 아니라 「하루」의 감성적이고 시적인 형태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도. 아침에는 햇살이, 저녁에는 어둠이,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웃음이나 불만이 어떻게 자신에게 말을 거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민족성을 나타내는 두가지 부사가 「빨리 빨리」와 「대충 대충」이라고 한다.

「빨리 빨리」란 말은 개인적 경험으로도 먼 아프리카땅 이집트에서 현지인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대표적인 한국말이었다. 그만큼 한국인들의 조급증은 외국까지도 널리 소문이 나 있는 상황이다.

핸드폰 보급률이나 인터넷 이용자들의 수자가 세계 여러나라 중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것도 다 이같은 조급증이 일조한 탓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1인당 휴대전화 사용시간은 세계 최고라는 기록이다. 또한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2 3초를 참지 못해 '닫힘' 버튼을 누르고, 웹 페이지가 로딩되는 1 2초를 견디지 못해 「뒤로」 버튼을 클릭하는 등등.

전 세계가 「시간 강박」과 「속도집착」 속에 젖어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무언가 빨리 이루어야 한다는, 해치워야 한다는 인식은 최근 한국의 심각한 사회 병리 현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은근과 끈기 여유를 숭상하는 것으로 묘사됐던 한민족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느림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것을 털어 버리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자」고 말한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日常)안에서 여백을 찾는 여유, 이는 곧 자신의 모습에 대한 파악이라고 얘기한다.

피에르 쌍소의 책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호응을 얻고 있는 것처럼 「슬로 푸드(Slow food)」운동이나 자전거타기 등의 시간적 여유를 갖는 취미활동 증가등 한편에서 잔잔히 일고 있는 「느림」에 대한 공감대의 확산 소식은 일면 반가운 일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 신앙인들이 지녀야할 「느림」의 여유와 기다림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최근 피정지도를 주로 하시는 한 신부님을 만난 자리에서 신자들의 기도 습관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기도 역시 「빠르게 빠르게」 신드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누르면 즉시 무엇인가가 튀어나와야 하는 자판기 문화에 익숙한 탓에 많은 신자들은 기도 역시 돈을 넣으면 커피등 원하는 것이 나오듯 즉시 응답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영성가들은 물가의 수면이 잔잔한 상태일 때 낚시대 찌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듯 하느님의 음성도 잠심의 상태일 때야 비로소 발견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열왕기 상 19장에서 엘리야는 불길이 지나간 다음 「조용하고 여린 소리」, 야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 처럼.

이것저것 들뜬 마음에 무언가 분주해지고 정신없어지는 휴가철이 되었다.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을 갖도록 하는, 느림의 여유를 찾아볼 수 있는 여름이 되었으면 한다.

몸도 마음도 그리고 우리의 기도 역시.

이주연(인천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