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鵬程(붕정) 萬里(만리) 詳報(상보)

입력일 2023-04-07 17:34:06 수정일 2023-04-13 11:13:18 발행일 1965-10-10 제 490호 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그리스도의 平和(평화) 人類(인류)의 平和(평화)
380萬(만) 熱狂的(열광적) 歡迎(환영)
聖母(성모)께의 傳求(전구) 여러번 당부

■ 로마 出發

▲飛行中 新聞記者 두번이나 찾아보고

비행중 교황은 두차례나 그의 방문을 떠나 신문 및 사진기자들과 환담하고 그의 「유엔」 방문 기념 「메달」을 선물했다.

첫방문은 오전 7시, 인사를 나누고 그의 여행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데 기념하길 희망한다 했다. 세시간 후 그는 다시 자기들을 방문하고 성명서를 낭독하면서 『우리의 분명한 희망은 우리들의 성실하고 겸손하며 성신의 도움을 확신하는 이번 사명이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주는 지도자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선을 향한 「책임감」을 찾게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그리스도의 평화는 인류의 평화』라고 했다.

교황탑승기의 이름은 「엠마누엘레 파스그노」. 그는 아침식사에서(공항출발 잠시후) 빵「잠」 「말므라드」와 「커피」 그리고 점심식사로는 고기가 약간 섞인 「콘솜」 「숲」 「햄」 찐 닭고기 찐 야채 수박과 과일 「화이트·와인」(술) 「커피」를 마셨다.

한 미국 해안경비정이 미국으로 날으는 교황 바오로 6세의 탑승기와 첫 통신을 했다고 보고했다.

상오 6시 14분 경정비 BIBB정은 「뉴욕」에서 1,320「마일」 북동쪽에 날으고 있는 동비행기를 「레이다」로 포촉 시속 832「킬로」로 강한 바람을 피해 예정「코스」보다 북쪽으로 날으고 있다고.

▲空中서 6大陸에 平和 呼訴 메시지

그는 세계 6대륙에 평화 호소 「메시지」를 비행기에서 보냈다. 카나다의 「뉴화운드렌드」 상공을 날으며 그곳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고 있는 교황께 그곳 지사는 비행기로 인사 「메시지」를 전송했고 상오 7시 50분 교종탑승기가 카나다와 「구스베이」 상공을 나를때 교황의 감사하다는 회답 「메시지」가 자사에게 전달되었다.

■ 美國 倒着

9시간동안 4,280「마일」 비행을 마치고 비행장에 내린 교황을 영접하는 공항에는 붉은 주단이 깔려 있었다.

면밀히 짜여진 「스케줄」은 비행기까지 「뉴욕」공항에 도착하자 뜻밖에 「타랍』까지 마중나온 우·탄트 「유엔」 사무총장에 의해 약간 차질이 생겼다. 이유은 교황은 그를 「유엔」 본부서 만나게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동 공항에 착륙 혹은 이륙하는 비행기들은 교황영접을 위해 30분간씩 이착륙을 연기하도록 요청되었고 우·탄트 총장을 위시하여 러스크 국무장관, 록펠러 「뉴욕」뉴지사, 웨크너 「뉴욕」시장, 스펠만 추기경, 판파니 「유엔」 총회의장과 4명의 미국인 추기경들의 영접을 받은 바오로 6세는 환영객들에게 손을 흔들며 답하고 「타랍」을 내려와서 일일이 미소와 악수로 인사했다.

▲콜럼버스役 再現 人波 長長 38KM

영어로 한 도착연설에서 교황은 『미국국민 여러분께 인사합니다』고 시작했다. 그는 『여러분의 나라에 첫발을 디딘 이 교황은 여러분을 축복하고 이 신대륙 발견자 크리스도퍼·콜럼버스가 이 축복받은 대지(大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심었을때의 그 역할을 재현(再現)하고 있다』고 말했다.

긴 여행에도 피로한 기색없이 「보스톤」 대교구가 특별히 마련한 「리무진」차에 올라 교황은 24「마일」의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6「미터」 간격으로 경찰이 저지선을 친 사이를 지나며 교황은 국민학생들이 흔드는 깃발과 악대의 연주에 미소로 답했다.

그가 통괴한 첫교회는 침례교회였다. 거리에는 바오로 6세의 기념선물을 사라고 외치는 장사군들도 있었다. 군중들을 향해서 서있으라는 지시를 받은 경관들이 지시를 어기고 힐끔힐끔 뒤돌아 교황을 보거나 한동안 지켜보기까지 했는데 그러나 관중들은 질서정연했었다.

공항으로부터 「만하탄」 중심까지 38「킬로」, 두시간이나 걸린 교황의 행렬을 지켜보는 거리의 관중들은 50명 이상이 종대(縱隊)로 겹겹이 서있었으며 수만명이 언덕에서 「아파트」와 사무실 창문 등 고층건물을 메웠고 30대의 「오토바이」위를 「해리콥터」가 폭음으로 뒤덮었다.

■ 市街 行進

▲밤새워 待期했던 觀衆들 歡呼 歡呼

분비는 시민의 「환영」의 소용돌이 속을 경호차와 함께 교황의 행렬은 서서히 「퀸즈」가를 지나갔다.

교황은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며 밤을 새워 그를 기다린 관중들에게 답했다.

군중들의 얼마는 아예 침구까지 들고 나와 24시간 전부터 이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백만명은 교황의 이번 최장거리이며 역사적인 여행을 보도하는 「텔레비」 앞에 모였으며 통신위성 「얼리·버드」 위성은 교황의 동정을 낱낱이 유럽에 중계했다.

자동차 행진이 「퀸즈」 거리를 지날때 경찰들은 운집한 군중들을 다루기 위해 고심했으며 시속 40「마일」의 강풍이 불었는데도 불구하고 군중들은 꼼짝않고 교황이 지나가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 군중가운데 한 수녀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볼수 있다는 것은 형용할 수 없는 기쁜 일이다』고 했으며 그와같이 있던 14세의 여학생은 『교황의 「뉴욕」 방문은 미국에 대단히 이로울 것이며 우리는 진정 경건한 마음으로 교황을 맞는다』고 덧붙였다.

▲爆破허위 豫告에 警察은 한때 緊張

같은 시간에 경찰들은 교황의 자동차행렬이 「만하탄」의 다리를 횡단하기직전 「퀸즈」 거리에서 폭탄이 폭발될 것이란 정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동 행렬이 그 지점을 지날때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고 폭발대신 교황을 환영하는 환성뿐이었다.

다음 이 행렬은 「뉴욕」 기아양육원이 있는 제3 「에브뉴」를 서서히 지나갔는데 동 기아양육원의 원아들은 지붕위에서 환성을 올렸다. 바오로 교황은 그들에게 오른손을 흔들면서 답했다.

오전 11시 15분(당지시간) 교황이 「만하탄」도(島)에 도착했을때 환영의 환성이 터져나왔으며 25분에는 중앙공원에 들어갔다.

교황성하는 또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사는 침울한 스페인계 빈민가(街) 「할렘」을 지나갔는데 이곳 교회학교 학생들이 거리에 줄지어 환영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美國 가톨릭의 精神的 「센타」

교황은 11시 45분 미국가톨릭의 영신적 「센타」인 성「바드리시오」 대성당에 닿았다.

경찰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11시 33분에 벌써 동 대성당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꽉찼으며 또 많은 군중들이 엄숙한 분위기로 성당밖에 있었다고 했다.

교황은 그의 양손을 벌려 환영 군중들에게 답했으며 군중들은 경찰들의 제지를 무릅쓰고 계단을 오르면서 그들에게 강복을 주고 있는 교황에게 접근하려 했다.

교황의 도착을 알리는 「올간」과 종이 울렸으며 교황은 기도드리려 대성당에 들어갔다. 그는 성당에 들어가 성호를 긋고 주랑(柱廊)으로 내려왔을때 거기 모여있던 고위성직자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여기엔 11명의 추기경과 미국 가톨릭의 고위성직자 평신자지도자가 거의 빠짐없이 모여 있었으며 몇 구역 저편에는 미국무성 러스크 장관이 도착했고 「월돌프」 탑에서는 존슨 대통령이 교황과 회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幸福해」 卽興 노래…黑人 女人이

교황이 제단 앞에 꿇어 기구를 마치자 스펠만 추기경은 교황을 환영하고 『어떤 말로 환영해야할지 거기에 적절한 단어는 없는것 같다』고 했다.

교황은 『나는 오늘 여러분과 같은 시민임을 느낀다. 그 이유는 내가 여러분의 나라와, 도시에 와 있을 뿐아니라 또 여러분은 「로마」 교회의 시민이기 때문이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강복을 가져왔다고 했다.

끝으로 교황은 평화의 「메시지」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기구를 요청하고 특히 가정과 집에 남은 노인·병자 및 아이들에게 그의 자부적 교황강복을 주었다.

이날 「뉴욕」 경찰 치안책임자가 거리에 나온 환영시민의 수를 3백80만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동원된 1만 8천 경관중 한 순경이 약간 다친외에는 사고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 흑인여성은 기쁨에 넘쳐 『나는 행복하다 교황님이 평화를 위해 오신데 진심으로 감사한다. 세계에는 하나의 인류라는 인종이 있을 뿐이다. 주여 모든 이를 축복하소서, 나도 모든 이를 사랑합니다』고 외쳤다.

■ 죤슨과의 會談

▲존슨 會談(회담) 場所(장소)에 敎皇旗(교황기)·菊花(국화) 萬發(만발)

4일 12시 30분 교황 바오로 6세와 존슨 대통령은 삼엄한 경계망이 철통같은 「월돌프·아스토리아」 「호텔」 36층 대통령실에서 50분 동안 회담했다.

교황 바오로 6세가 동 「호텔」에 도착하자 존슨 대통령은 우유빛과 금빛으로 찬란한 대통령실 문전에서 교황을 영접한 후 큰 「홀」을 지나 회담이 개최될 방으로 교황을 안내했다. 교황이 「호텔」에 도착하기 몇시간 전부터 「아스토리아」 「호텔」 주변에는 비밀 정보원들과 형사들 및 사복경관들이 물샐틈없는 경계망을 펴고 눈에 쌍심지를 세우고 있었다. 경찰은 「호텔」 건너편에 있는 성공회 성 「발도르메오」 성당 앞을 비롯하여 근처에 있는 건물들의 처마밑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오전 11시 조금전부터 「호텔」부근은 통행이 금지되었으며 정오가 가까와 오자 50가 입구에 있는 「로비」(대합실)에서 인도(人道)에 이르기까지 붉은 융단이 깔렸다. 입구 양쪽에는 교황기(旗)와 더불어 노랑과 흰빛깔로 화사한 국화꽃이 담뿍 담겨있는 2개의 거대한 동(銅) 화분으로 장식되었다.

▲開拓者(개척자) 그린 油畵(유화) 會議室(회의실)에 걸려있고

방안에 장식된 많은 꽃다발 중에 하나는 교황기를 상징하는 노랑꽃과 흰꽃으로 빛나고 있었다. 회합실 옆 큰 「홀」에는 하이얀 전화 세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백안관에 연결된 직통전화와 「교황과 그의 수행원」이라는 표말이 붙어있는 것과 「존슨 대통령의 그의 각료」라고 표시된 전화들이었다. 사진촬영을 위해 마련된 그 옆방에는 존슨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개척시대의 미술가 프레드릭·레밍톤이 그린 유화(油畵)가 벽난로 위에 걸려 있었다. 값이 8만5천「달라」나 되는 이 그림은 「뉴욕」 화랑에서 빌려온 것인데 「사랑의 부름」이란 제목이 붙어있고 평화의 「파이프」를 물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 인디안을 그린 그림이다.

회담이 거의 끝날즈음에 존슨 대통령은 자기의 부인과 올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딸 루시양을 교황에게 소개했다.

존슨 대통령과 교황은 13시 35분 경 다시 스펠만 추기경 저택에 도착하며 오찬을 마친후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15시 53분 교황은 드디어 그의 이번 역사적 여행의 목적지인 「유엔」 본부를 향하여 스펠만경 저택을 떠났다.

교황은 사무총장 우·탄트씨의 영접을 받고 그의 안내로 먼저 「묵념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 UN 訪問

▲UN內서도 TV로 敎皇 演說 들어

이 「묵념의 방」은 전사무총장 고(故) 함마슐드씨에 의해 만들어진 기도의 방이며 국가원수들이 「유엔」을 방문할때 먼저 안내되는 곳이다. 교황과 우·탄트 사무총장은 잠시 이 방에서 평화의 기도를 묵념으로 올린 후 3층 총회회의실 옆에 있는 귀빈실로 옮겨 갔다.

드디어 「유엔」 총회의장 판파니씨의 환영 인사를 받은 교황은 세계 1백17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들과 2천여의 청중 앞에서 역사적이요 극적인 평화호소 연설을 하였다.

교황의 연설은 31분 요하였는데 그의 연설이 끝난것은 16시 3분이었다. 청중은 다시 총 기립하여 열렬한 박수로써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고 교황은 형제애의 표시로 연설끝에 대표들에게 양손을 드높여 답하였다.

교황이 이 건물내에서 방문한 첫방은 안전보장회의실이었다.

▲無意識的으로 敎皇 손잡은 蘇聯外相

다음으로는 신탁위(信託委) 회의실, 경제사회위(委) 회의실을 방문하였는데 이들 방에 있는 대표들 및 기자들은 총회실에 들어가지 못했고 「텔레비」로써 교황연설을 들었다.

마지막 방문처는 북쪽 각국대표실이었는데 그곳에서 교황은 1백17개국 대표들과 만났고 각자에게 15초의 여유가 주어졌다. 이 대표실벽에는 교항이 우·탄트 사무총장은 각국대표들을 교황께 소개했는데 그 가운데는 소련외상 그로미코씨도 들어있었다. 그로미코씨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교황과 몇마디 주고받는 동안 거의 무의식적으로 교황의 손을 잡고 기쁨을 표시했다.

그밖에 고(故)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여사와 그의 시동생들인 두 상원위원 및 기타 「뉴욕」의 저명인사들을 접견했다.

18시 조금 지나 그의 출발시간이 넘었는데도 교황은 우·탄트 사무총장과의 작별을 아쉬하듯 「유엔」 본부에 머물고 있었다. 탄트씨의 사무실에서 총회회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쿠바으흐」 출신의 한 소년과 여러 아이들이 바치는 장미꽃다발과 기타 선물을 받았다. 여기서 「유엔」에 종사하는 모든 직원들을 접견하고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교황이 「유엔」 본부를 떠난 것은 18시 18분.

■ 宗敎 指導者 會談

▲平和 呼訴 積極 뒷받침 約束 宗敎 指導者

18시 23분 교황은 미국내 비가톨릭교회 대표들과 만나기 위해 「성가정」성당에 도착했으며 여기서도 이날 어디서나와 같이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고 대개 1만5천으로 추산되었다. 성당에 들어선 후 교황은 제대 앞에 마련된 자리에서 각 교회대표들에게 인사하였다. WCC 대표는 「새로운 인류 형제애정신」을 강조하고 WCC와 가톨릭 교회간의 협력과 세계평화를 위한 공동의 기도를 다짐했다. 유태교 대표는 교황을 치하하면서 『우리들도 피로를 잊고 평화수호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교황은 세계평화를 위해 종교인들의 단합과 협력을 호소했다.

교황의 이같은 연설에 보내는 박수소리는 바깥 함마술드광장에까지 들렸다. 이들 종교대표들은 교황에게 현판을 선사했다.

18시 35분 교황은 동 성당을 떠나 다시 스펠만경 저택으로 돌아갔으며 19시경에 정교회 남북미(南北美) 총책임자 야고브스 대주교가 동 저택에서 나오는 것을 볼수 있었다. 그는 물론 교황을 만나고 나오는 길이었다.

■ 平和미사 博覽會

▲9萬 雲集한 「미사」 6大陸 代表 領聖體

9만명이 훨씬 넘을 것이라고 추산되는 「뉴욕」의 경건한 가톨릭신자들이 거대한 「양키·스타디움」으로 쇄도한 가운데 교황이 집전한 「평화를 위한 미사」는 영어와 「라띤」어로 거행되었는데 신자들의 기구문은 「유엔」의 다섯 공용어인 영어·불어·스페인어·중국어 및 소련어로 낭송되었다.

68세의 교황 바오로 6세는 강론을 통해 모든 중교들이 평화운동을 재강화할 것을 했다.

이어 교황은 6대륙을 대표하는 12명의 어린이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었고 이때 교황이 지닌 사명의 본질은 최고조에 달했다. 또한 6대륙을 대표한 6명의 추기경도 교황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강론중 교황은 3천명의 비가톨릭 크리스챤과 유태교인에게 『나는 여러분 모두를 나의 마음가운데 그리고 기구중에 기억했다』고 말했다.

「뉴욕」 정북(正北)학교의 초석으로 사용할 성「베드루」성당의 돌을 스펠만 추기경에게 선물로 주면서 『이것은 나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선물』이라면서 『경(卿)은 이 초석에서 「뉴욕」의 가톨릭과 「로마」 교회를 일치시키는 신앙과 사랑의 상징을 볼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교황이 「양키·스타디움」을 떠날때 군중들로부터 「교황성하 만세」가 터져나왔으며 교황은 점점 멀어졌고 군중과 합창단은 미국가 「성조가(星條歌)」를 불렀다.

▲꽃불로 歡迎一色 敎皇들린 博覽會場

교황 바오로 6세는 「케네디」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계 박람회」를 잠시 들려 박람회장 로버트·모세씨의 영접을 받고 각국의 전시관을 둘러 「이해를 통한 평화」란 박람회의 표어판 「아취」를 통과 「육대륙의 분수」를 지나 「바티깐 전시관」으로 향했는데 교황의 자동차행렬이 지나가는 곳엔 꽃불시위로 환영일색이었다.

교황은 거장(巨匠) 미켈란젤로의 걸작품이며 마리아가 십자가에 못박혔던 그리스도를 안고있는 조각 「삐에타」 앞에서 침묵을 지킨채 잠시동안 응시한 후 윗층에 있는 「발코니」에 나타나 『굳바이』하고 작별인사를 하자 서운해진 군중들로부터 『굳바이·굳바이』하는 소리가 차거운 밤공기에 메아리 쳤다.

■ 美國(미국) 出發(출발)

교황의 환송군중은 아침 출용때의 반쯤밖에 안되었다. 교황은 이별 인사를 나누면서 군중들 속을 빠져나와, 오후 11시 14분 비행기에 닿았으며 비행기는 뜨기 시작했다.

그는 오후 11시 15분 비행기안으로 사라졌다. TWA707 「젯트」기는 오후 11시 24분 이륙한 후 「하드슨」강으로부터 동부강위를 마지막으로 돌고 「뉴욕」을 떠났다.

■로마 皈還(귀환) - 敎皇(교황)의 歸國(귀국)을 伊社會(이사회) 黨首(당수)도 歡迎(환영)

교황이 탑승한 비행기는 「뉴욕」을 출발 「레오날드·다빈치」 공항에 오후 12시 1분에 착륙 「로마」에 귀환했다.

교황이 도착하기 30분부터 열광적인 환영군중들이 교황의 안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프랫홈」에서 1천명 이상의 군중들은 교황이 탑승기에서 몸을 나타내자 환호성을 울렸다.

알도·모로 수상은 6명의 각료와 사라가트 대통령대리 등 이태리정부 환영단을 대동하고 교황을 맞았다. 동 환영단 중에는 사회당수 넨니씨도 있었다.

교황은 『나는 평화의 사명을 완수했다』고 도착성명을 했다.

교황은 성명을 통하여 『나의이번 여행의 의향은 단지 평화의 순례이다. 나는 세계를 대표하는 「유엔」에 평화를 심어주길 원했다. 언제나 교회는 평화를 수호하는 자와 가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