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마을 이야기 / 이향규

이향규 테오도라(런던한겨레학교 교장)
입력일 2023-01-11 수정일 2023-01-11 발행일 2023-01-15 제 332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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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런던한겨레학교의 어른들은, 그러니까 학부모와 교사는 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북한 함경북도, 함경남도, 양강도, 남한 서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왔다. 아이들은 대부분 영국에서 태어났다. 한국말은 할 수 있지만, 한글은 잘 모른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런던한겨레학교에서 한글을 배운다.

영국에 난민으로 정착한 북한 부모들이 주축이 돼 2016년에 런던한겨레학교가 세워졌다. 청진에서 온 아버지가 앞장을 섰고, 평양에서 온 어머니가 교장이 됐다. 2021년에 교장이 된 나는 서울 출신이다. 지금 우리 학생은 90명쯤 된다. 부모의 고향을 물어 보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굳이 구별하자면 남한 출신과 북한 출신이 반반이다.

이 학교는 매우 특별하다. 나는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만든 모임에 탈북민이 소수 참석하는 것은 간혹 보았지만, 북한이탈주민이 만든 곳에 한국 사람들이 합류한 것, 어느 한편이 압도하지 않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공간은 처음 본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이곳이 분단된 한반도 밖이고, 런던 교외에 위치한 뉴몰든이라는 이 마을에는 탈북민이 약 1000명이나 살고 있고, 남한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나 다 영국 주류사회의 시각에서는 소수민족 이민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민족의 문화를 가르치고 싶다는, 같은 열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문화다양성을 존중하고, ‘평등법’ 같이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다는 것도 남북한 출신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한반도에서는 남북한 일반주민이 서로 만날 일이 아직 요원하고, 남한에 사는 소수의 북한이탈주민은 활동 면에서 위축돼 있는 것에 비하면, 이곳의 세팅은 다르다.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분단이 걷힌 한반도에서의 삶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같이 사는 데 중요한 것은, 평등한 관계이고 존중이다. 끊임없는 접촉과 교류는 서로를 향한 뾰족한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다. 이제부터 이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이향규 테오도라: 런던한겨레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후아유」, 「영국청년마이클의 한국전쟁」, 「세상이 멈추자 당신이 보였다」등의 책을 썼고, 메리놀 외방 전교회 함제도 신부 전기 「선교사의 여행」을 편찬했다.

이향규 테오도라(런던한겨레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