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아! 교우시군요? 그래서요? / 정호철

정호철 대건 안드레아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입력일 2022-05-03 16:14:49 수정일 2022-05-06 12:45:59 발행일 2022-05-08 제 329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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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인으로 사업을 하는 요셉씨는 중국에서 오랜 기간 가정용품을 수입해 국내에 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분야의 국내 제조공장들이 거의 문을 닫아 시장수요에 부합하려면 중국으로부터 수입을 하지 않고는 도리가 없다. 그런데 요셉씨는 얼마 전에 관세청으로부터 상표법 위반이라는 혐의를 받고 출두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수입된 물품 중 일부가 상표법에 저촉됐다는 혐의였다.

위법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된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대개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 아닌가? 무엇이 잘못된 거지?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이 상황이 어떻게든 잘 처리되길 원했던 요셉씨는 내심 열심히 기도하며 관세청 조사실로 불려갔다. 그런데 출두해 마주한 조사관의 손가락에 묵주반지가 끼워져 있는 게 아닌가? ‘아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셨구나. 그러면 그렇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요셉씨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조사관님 교우세요? 저도 교웁니다”라고 말을 붙였다. 그 순간 조사관은 요셉씨를 째려보며 “그래서요?”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순간 싸늘해진 분위기로 조사는 진행됐고 그 후일담은 상상에 맡긴다.

서울시 특수 세무 조사팀이 고액 탈세자들을 방문해 현장의 수사 상황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수억 원의 세금을 체납하고 국세청으로부터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았음에도 세금을 내지 않은 탈세자의 안방 벽에는 십자고상이 걸려있고 예수상, 성모상이 경대 위에 가지런히 모셔져 있었다. 장롱 속에서는 고액의 현금다발과 명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옆에 있던 묵주도 화면에 담겼다.

교우들끼리 세상 한복판에서 만나는 일은 반가운 일이다. 같은 신앙의 동반자여서이고, 하느님 안에 한 형제자매이고 지상의 교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아 교우시군요? 예, 저도 교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렇게 풀려야 정상인 대화가 “그래서요?”가 될 때는 무언가 서로 불편한 관계가 우리 앞에 놓여 있을 때다.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은 끝이 났고 이제 지방 선거철이다. 올해도 정치판에는 신자임을 자처하는 정치꾼들로 넘쳐난다. 이들은 선거 때만 되면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돼 나타나건만 평상시에 이들이 성당에서 목격된 적은 없다.

교우가 정치를 한다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다. 우리는 교우 정치인들이 좋은 정치를 하고 교회의 정신을 정치에 담아내기를 기대한다. 신자답고 품격 있는 표양으로 평화의 사도가 돼 이 나라와 지역의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교우라는 연고만 내세우고 교회를 이용하거나 표를 구걸하도록 용인해서는 안 된다. 천주교 신자라고 해놓고 이들 정치꾼들은 하나같이 이웃 종교와는 또 얼마나 친한지 틈만 나면 불당에 가서도 예배당에 가서도 얼굴 내밀기에 여념이 없다.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할 때다. “저 신자입니다”라고 표를 호소할 때 “그래서요?”라고 물어보아야 한다. 신자이기만 하면 표를 주는 시대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신자라면 응당 신자다운 표양과 양식을 지녀야 하고 민주적인 소양 또한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되물어야 한다. “저 교우입니다. 그래서요?”

정호철 대건 안드레아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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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철 대건 안드레아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