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자유롭지 못한 요즘, 성당에 가지 못하지만 대신 무형의 성당인 가톨릭 평화방송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숨결에 기댈 수 있는 은혜에 감사드린다.
지난 9월 순교자 성월을 보내며 여는 미사와 닫는 미사에 참례하면서 진리를 위해 몸 바친 순교성인들의 숭고함을 다시 생각해 봤다. 신앙을 지키다 세상을 떠난 순교성인을 기억하고 그들이 남긴 아름다운 씨앗이 자라도록 믿음의 은총을 청했다. 또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찬미와 감사와 흠숭을 영원히 받아 누리는 기도의 신비를 일깨우며 은혜롭게 보낸 한달이었다.
그즈음, 나는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걸음걸음 걷고 있는 남편 곁에서 은총의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재생불량성빈혈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은 지 9년. 그동안 여러 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였으나 이번에는 무균병동에 입원해 4개월째 병원신세를 지게 됐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질서가 뒤범벅된 와중에 대학병원의 방역수칙은 엄중하고 철저하게 지켜졌다. 남편이 입원하고 있는 무균병동 병실에서는 간병인 1명 외에는 가족도 면담을 할 수 없었고, 남편은 치료의 고통을 견디며 고달프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때 생각난 것이 남편의 신앙문제였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남편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내 오랜 기도 중의 숙원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세례성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간절함으로 기도에 매달렸던 하루하루. 갑자기 남편이 전파력이 강한 보균자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옆 병동의 1인실로 옮기게 됐다. 그리고 얼마 뒤, 담당 교수님께서 가족면담을 할 수 있다고 연락을 주셨다.
1인실에서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라면 신부님을 초대해 대세를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무균병동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담당 간호사실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여 허락을 받았다. 남편도 가족들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신부님을 초대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느님의 섭리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신부님과 만난 남편은 신부님의 말씀과 모든 절차를 받아들인 뒤 요아킴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거룩하게만 느껴졌던 그 순간, 나는 전에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말을 남편에게 전했다. “여보, 사랑해.” 그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주님께서는 남편은 물론이고 나에게도 변화를 주셨다. 고통을 이겨내면서 사랑할 수 있는 신비로움은 행복의 원천이었고 하느님의 선물이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남편은 신부님과 축하의 악수를 하며 “주님을 부르던 날, 내게 응답하셨나이다”라고 말했다. 감사와 찬미가 방 안 가득 모두의 가슴에 환희로 번진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서로에게 불편함을 가져왔던 남편의 섬망증세도 사라졌다.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주님의 고통으로 구원된 신비를 마음에 담게 하시고 몸의 고요함과 마음의 평온함으로 평화를 누리게 하심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 됐다.
감사와 찬미의 순간을 함께하며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라는 마태오 복음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믿음의 은총으로 드리는 나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루어주신 믿음의 은총으로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병 중에 고통받고 있는 모든 분들과 요아킴의 치유를 위해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이 모든 일들을 제가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