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일·전교 주일 제1독서 (이사 2,1-5) 제2독서 (로마 10,9-18) 복음 (마태 28,16-20) 때로는 순수한 신앙 살아내지 못하고 서로 상처주기도 하지만 세상에 가득한 악과 모순 이겨내는 것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 하느님 자녀로서의 품격 지니고 선교 사명 용기있게 펼쳐가길
저는 지금 전교 주일을 맞이하는 마음이 이리도 적적하고 외로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해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는데 그때는 오직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 모든 행사를 접는 것도 어떤 모임도 삼가는 것도 최선이라 여겼기에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이제 은둔을 강요받고 칩거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과연 전교가 가능한 것인지, 회의감이 듭니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흐릿해진 세상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이 꺾이는 느낌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쳐도 뒤엉킨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교황님의 책을 꺼냈습니다. “복음화는 하느님 나라를 우리 세상에 현존하게 하는 것입니다.”(「복음의 기쁨」, 176항) 이 단순한 문장을 읽는데 확, 숨통이 트였습니다. 주님의 뜻인 선교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저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기쁘게 살아내는 것이라는 이르심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선교를 위해서는 내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전달하는 것임을 다시 새기며 정녕 홀가분해졌습니다. 그동안 제 골머리를 썩이던 숫자의 부질없음이야말로 진리를 잊고 전전긍긍하는 어리석음이었음을 통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전교한 사람의 숫자가 얼마인지 물으신 적이 없고 어떤 실적을 쌓았는지 따지지 않으신다는 걸, 어찌 잊었을까요? 이사야 예언자는 오늘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삶의 이유를 명확히 일러줍니다. 인간의 존재 이유는 하느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 복된 예언을 전하며 벅차올랐을 예언자의 마음이 전이되는 듯, 그 감격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진심으로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모든 말씀이 현실이 될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성경 말씀에 배어 있는 절절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신앙의 선조들이 살아낸 확신에 찬 믿음의 기도가 온전히 이루어지리라 믿는 사람입니다. 하여 세상의 극심한 악과 모순 속에서도 하느님의 선과 자비가 승리하고 있음을 체험하는 존재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세상의 관습과 전통과 상식을 뛰어넘는 힘을 선물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 우리를 사로잡는 갖은 원의와 갈망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순수한 신앙을 살아내지 못하고 세상의 가치와 뒤섞인 ‘자기만의 복음’에 잠식하여 주님과 동떨어진 삶을 살기도 합니다. 결국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서로 부딪치며 상처를 주고받으며 허비하고 헤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스도인은 결코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해됩니다. 무작정 사랑하는 일에 초능력을 지니지도 못했기에 비난할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 타인을 당신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있습니다. 우리 안에 심어주신 사랑을 발견하여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반목과 대립이 만연한 세상을 끊임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전해주는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당신의 사람인 까닭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온전하고 완벽한 사랑의 방법을 반복하여 알려 주고 계십니다. 어두워 앞이 아득해진 세상에 빛이신 주님을 품고 나아가라 하십니다. 하느님 자녀의 긍지를 당신의 빛 안에서 당당히 살아내라 하십니다. 낮아지고 작아지며 더 내어줌으로 주님의 빛이 되라 하십니다. 약속해주신 복된 평화를 온전히 누림으로써 이웃을 감동시키기를 원하십니다.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한 땅에서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당신의 지상명령을 선포하십니다.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이 막중한 사명에 겁을 먹는 우리에게 든든한 약속을 해주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진리이신 주님의 약속이 이리 선명하니 겁내지 맙시다. 하느님 자녀의 품격을 지니고 주님의 빛 속을 걸어갈 때,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내가 아닌 주님의 사랑으로 꼭 그리될 것입니다. 다만 지금, 곁에 계신 주님을 가로막지 말고 주님께서 이루시도록 길을 비켜드립시다. “주님께서 싸워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탈출 14,14)는 당부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매일 매일 봉헌되는 미사를 통해서 온 세상에 주님의 자비를 채워주시니 참으로 그렇습니다.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정의를 제대로 인식하는 은혜를 주시길 성모님께 청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모 어머니처럼 주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를 원합니다. 진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오직 서로 더 사랑하기 위해서 ‘다투는’ 축복을 살아내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이 주님의 빛으로 환해지기를, 복된 묵주기도 성월의 은총에 기대어 소원합니다.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