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염보현 전 서울시장의 구속을 보고 / 변기영

변기영ㆍ수원교구 천진암본당 주임신부ㆍ한국정신사연구원장
입력일 2019-08-21 15:59:47 수정일 2019-08-21 15:59:47 발행일 1988-06-05 제 1608호 5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죄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
행정관들의 주머니와 일부 정치인들의 창고

대통령 이 취임식이 끝나자 며칠 안가서 바로전직 대통령의 친동생이 권력배경의 비리와 부정축재로 구속되었다.

그런데 소문깨나 나있던 그 축재의 성격과 규모의 발표 때문에 보다는 그처럼 막강했던 사람을 구속하였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많은 이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현 정부의 독자적인 체질과 그 과감한 결단을 온 국민들이 확인하는 기회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염보현 전 서울시장의 고속기소를 보면서 앞서 와는 다른 면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염보현 전 서울시장은 집권층의 정치인들 중의 하나였다든가, 혹은 권력을 배경으로 부정축재에 혈안이 되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기보다는, 그래도 비교적 청렴하고 근면하며 공익정신으로 일하는 동시에 부하를 아끼고 상관에게 충성을 다하는 정확한「행정관」으로 필자는 믿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상관에 대한 그의 충성이 정도가 지나쳐서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부정축재자들에게 하수인으로까지 오인되도록 처신하였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적어도 발표된 바에 따라 십여 차례에 걸쳐 일억 이천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사실을 들으면서 느끼는 바는 종종 몇 백억이니, 몇 천억이니 하는 소리를 들어왔던 시대라서 그런지 그의 구속자체에 관해서는 놀라면서도 이에 비하여 뇌물수수의 방법과 규모에 관해서 만은 놀라게 되기보다는 오히려 좀 의아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여하간 염보현 전 서울시장이 재물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그런 자리에서 그만한 기간에 그보다야 훨씬 더 많은 부정축재를 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사실상 오늘의 우리 사회에 깔려있는 비리와 부정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느껴진다. 예컨대, 최근의 시사적인 현실로서 지난번 대통령선거를 회상해보자. 각 후보자들은 엄청난 자금을 뿌렸다고 보는데, 그 모든 후보들이 각자 자기의 깨끗한 돈들을 썼다고 믿어지지가 않는다. 또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많은 후보들과 그 지지자들이 대통령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자금을 썼다고 보는데 모두가 역시 각자 자기의 깨끗한 돈들을 썼을까? 이 역시 그렇게 생각되지가 않는다. 또 지금까지의 선거를 통하여 수건하나, 비누 한개, 또는 막걸리 한잔이라도 받은 국민들이 있다면(꽤 있지 않나 여겨지는데) 이 역시 신성한 주권행사를 위해 일종의 뇌물을 받은 것이 되지 않을까? 이뿐이랴?….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뇌물수수의 액수가 몇 백억이나 몇 천억이 안되는 작은 규모는 눈감아주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우리 온 국민이이기회에 다 같이 반성하자는 것이다.

전에 이스라엘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히는 여자를, 마을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는 관습법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죄녀(罪女)를 잡아놓고, 그 둘레에 모여든 군중에게 예수는 근엄하게 말하였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집어서 저 여자를 쳐라!』이 말에 그 여자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나이가 많은 자들부터 차례로 모두가 물러가 버렸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국익(國益)의 차원에서 염 시장처벌은 올림픽이후로 함이 바람직하다

일반가정에서도 경사스러운 큰일을 목전에 두면, 가급적 가족들끼리 마음상할 만한 사건을 들추어내는 것을 참거나, 경사 후로 미루는 것이 뼈대 있는 집안의 예의다. 것은 다가오는 경사에 동루나 탈이나 작은 불상사의 먼 원인이라도 예방하는 동시에 경사준비와 그 거행하는 예식행위 자체가 언쟁이나 시비보다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염보현씨는 올림픽을 처음 개최하는 서울시의 시장으로서 올림픽 준비를 위하여 열심히 일한 것만은 사실이다. 어려운 상관들과 그 측근들 틈에서, 그 나름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번 올림픽 종료식에 가서 감격스러운 올림픽 깃발을 들고, 온세계에 배달겨레의 위용을 보이던, 서울시민의 대표로서의 그의 존재와 위치는「염보현」이라는 한 개인의 성격을 넘어서, 분명히 세계에 자랑스러운「서울시민의 대표」의 독특한 기능을 수행하였다는데서 우리는 좀 이번 구속기소사건의 발표에 아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아직도 많은 서울시민의마음속과 눈앞에서 올림픽준비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던 그의 모습과 올림픽 깃발을 흔들던 그의 감격적인 순간들이 사라지지 않은 시기이다. 그러므로 그의 죄목 재판관 벌칙은 가급적 올림픽 이후로 미뤘으면 한다. 야당의 어느 대표가 전임대통령의 듣기에만도 전세계 만민 앞에 창피스러운 부정축재조사와 광주사태 진상조사 등을 올림픽이후로 미룰 수도 있다는 외견발표를 하였다니, 이는 많은 국민들에게 흐뭇한 호감을 느끼게 하는 자세라고 하겠다.

올림픽 준비를 개최 직전시기까지 준비하는데 주동역할을 한 그 개최시의 시장이 뇌물수수로 구속 중인 상태에서 그 서울시민들과 많은 국민들이 무슨 얼굴로 세계만민을 초청해놓고,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올림픽을 거행할 수 있을까? 사실 매우 걱정스럽다. 국내 문제에 있어서 그를 구속함으로 얻은 것도 많겠지만 국제적으로 잃는 것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필자의 소견으로는 가급적 속히 염보현 전 서울시장을 국익의 차원에서 석방하고, 그의 범법행위에 대한 입건조사는 계속하되 형의 집행은 올림픽이후로 미루는 것이 더 좋고 우리 모두에게 더 이익이 되리라고 믿는다.

더욱이 그의 재임기간에는 일억 이천여만원 어치의 뇌물수수라는 잘못한 일 외에도 잘한 일도 꽤 있을 수 있다고 보므로, 현직을 떠난 사람에 대하여 어떤 과오만을 들추는 것보다는 좀 잘한 업적도 생각해 주어야할 것이다. 즉 과오는 과오대로, 또 업적은 업적대로 인정해야 하며, 혹시라도 가정이나 직장이나 국가에 있어서, 선조들이나 선배들이나 선임자들의 과오만을 들추어내고 파헤치는 일은 좀 과격한, 또 하나의 더 큰「과오」가 되기 쉬울 것이다.

변기영ㆍ수원교구 천진암본당 주임신부ㆍ한국정신사연구원장

기자사진

변기영ㆍ수원교구 천진암본당 주임신부ㆍ한국정신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