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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걸프전쟁’ 신이 원한것인가/이윤자 취재국장 대우

이윤자 취재국장 대우
입력일 2018-12-27 17:05:53 수정일 2018-12-27 17:05:53 발행일 1991-01-27 제 1739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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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알라의 뜻인가. 그들이 믿는 신 알라는 진정 인간의 생명을 원한단 말인가. 신의 뜻이라면 그 신은 너무 잔인하다. 그러나 파괴와 폐허, 공포와 죽음이라는 최악의 결과만이 기다리는 전쟁을 신이 선택했을 리 만무하다. 신의 얼굴은 선, 그 자체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함은 신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무기이다. 선함의 최상급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의 신이 인간의 생명을 희생양으로 요구할리 만무하다. 신이 인간의 생명을 요구하던 시대는 오래 전의 얘기다. 아니 신은 다 한 번도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이었을 뿐이다. 인간은 신의 뜻을 자기의 의지대로 이용했을 뿐이다. 인간의 이기심이 선한 신의 얼굴을 망쳐 놓은 것이다.

아랍민족의 생존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도화선에 불을 당긴 오늘의‘걸프전쟁’은 분명 시대착오적인 발상의 산물이다.

신은 우리 편이라며 승리를 장담하는 후세인은 어린아이까지 포함, 마지막 한명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고 있다. 그뿐인가. 후세인은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아래 모든 아랍 민족들의 전쟁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그에게 무수한 인명을 살상할 권리가 과연 있는가. 물론 없다.

그렇다면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한 다국적군의 명분은 합당한 것인가. 이 역시 ‘예스’라 대답하기 곤란하다. 어떤 명분이라 하더라도 전쟁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될 수는 없다. 후세인처럼 신을 끌어 들이지는 않았지만 미국은 전쟁을 택했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전쟁을 택한 의지가 평화를 위한 노력에 앞섰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하에서의 선택을 인정하면서도 최선의 선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다. 호사가들은 이번「걸프전쟁」을 신들의 전쟁이라고 조크를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후세인의 신 알라와 부시대통령의 신 하느님, 여기에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까지 합세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짓궂은 말장난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 든다.

토마호크, 스커드·패트리어트 등 이름 외우기도 힘든 각종 미사일을 비롯 가공할 최신예 무기들이 판을 치는 마당에 신의 힘을 운운하는 것이 우습기조차하다. 이미 인간집단의 권력 다툼은 신의 영역을 허용하지 않은지 오래다. 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을 만큼 인간은 스스로를 완전 무장하고 있은 지 오래다. 만일 인간이 신의 존재를 받아들였다면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이다. 우리식으로 비유한다면 호랑이가 담배를 먹던 시절의 이야기다. 인간이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던 그 옛날의 이야기다. 구약성경이 전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일면 전쟁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좀 더 가까운 역사 속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들 수가 있다.

“코란을 믿겠느냐, 칼을 받겠느냐”. 반달형의 칼을 휘두르며 그리스도교국을 회교의 말발굽아래 초토화시키던 이슬람에 대항, 십자군이 남긴 오점은 회교도에 못지않다. 이 사실은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오류의 역사를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속의 사건이어야만 한다. 가공할 위력을 총망라한 무기들을 지닌 인간이 그 무기를 휘두르면서 성전 운운한다면, 신의 이름을 들먹인다면, 웃겨도 한참 웃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신은 어느 누구의 편이 아니다. 굳이 편을 갈라야 한다면 정의의 편이어야 한다. 그 정의는 자기 독선에 빠진 눈으로 판단하는 정의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로 잰 정의여야 한다. 정의의 하느님은 바로 사랑의 하느님이다. 사랑의 하느님이 전쟁광의 편이 되어줄리 만무하다. 후세인의 신 알라 역시 전쟁과 살상을 좋아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후세인의 말대로 이번 ‘걸프전쟁’이 알라의 뜻이라면 그런 신은 멀리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특정종교를 비방하자는 취지는 물론 아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 평화의 사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호소도 전쟁을 억제하지 못했다. 전쟁발발 직전, 직후를 전후해 교황이 보낸 평화에의 메시지도 사막의 폭풍을 막지 못했다. 미국의 작성한 최악의 전쟁 시나리오가 만일 전개된다면 인류는 엄청난 재앙 속에 내던져지고 말뿐이다. 양측에 보낸 교황의 메시지는 인간이 스스로 그 재앙을 불러 들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평화를 볼모로 전쟁을 벌이는 인류가 평화를 선택하라던 교황의 호소를 가슴 치며 되새길 날이 올까봐 두렵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다. 평화를 향한 길에 다소 지각을 한다한들 그것이 문제가 될리 없다. 팔짱을 끼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번 전쟁을 하루빨리 종식 시키는 노력은 너와 나,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 이중에서도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가시적 기구 유엔은 무기력함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신은 평화의 편이다. 우리가,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은 평화를 사랑하는 일이다.

이윤자 취재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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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자 취재국장 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