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기획/특집

[목자유감] 목욕/최재영 신부

최재영 신부ㆍ군종교구 상무대본당
입력일 2018-11-19 15:54:40 수정일 2018-11-19 15:54:40 발행일 1993-11-21 제 1881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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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바로 북한땅이 내려다보이는 강원도 전방지역 마을의 군인성당에서 군종신부 생활을 시작하였다. 워낙 산골짜기다 보니까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마을에 대중목욕탕이 없다는 것이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였다. 더구나 사제관의 보일러도 신통치 않아 더운물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불편함은 더욱 컸다. 가스레인지에 한 찜통씩 물을 데워 몸을 씻어야 했으며, 그것이 귀찮아서 나중에는 운동으로 몸에 땀이 흠뻑 밴 상태에서도 땀을 그냥 말려버려 씻지 않고도 지낼 수 있는 요령까지 터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에서 관리하는 목욕탕이 마을에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목욕탕이 하나밖에 없어 남녀 혼탕(?)이라는 것이다. 한 개의 목욕탕을 가지고 매주 수·일요일은 남자들이 그리고 월·목·금·토요일은 여자들이 사용하며, 그것도 목욕탕이라고 화요일은 쉰다고 한다.

수요일 오후, 신학생과 함께 목욕탕 구경을 갔는데 두 명만 들어가면 꽉 차는 온탕 하나에 샤워꼭지 다섯 개가 전부였다. 차라리 목욕을 안 하고 말지, 아니지 그래도 이게 어딘데, 그날부터 매주 수·일요일은 신학생과 내가 단체로 목욕 가는 날로 정해놓고 가서 열심히 때를 밀었던 기억이 난다. 도시의 시설 좋은 사우나탕만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꾸며낸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육체의 때를 씻는데 대한 불편함 뿐 만이 아니라 전방 지역에선 군인신자들이 영혼의 때를 씻어낼 기회까지도 드물고 불편하다는 것이다. 부대여건상 일 년에 한두 번 군종신부를 볼까말까 한 오지에서 근무하는 군인신자들이 많은데 그들은 어디서 그 영혼의 때를 씻고, 깨끗한 마음으로 군생활에 임할 수 있을까? 그런 그들을 목욕시키기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욕타월(영대)을 매고 때밀이를 자처하지만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지치고 흠투성이인 몸과 마음으로 신부를 찾아와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병사들. 때로는 연병장의 나무 아래서, 훈련장의 탱크 앞에서, 내부반 출입문 입구에 서서 고해성사를 보는 그들의 눈에 맺힌 참회와 감사의 눈물을 볼 때면 성사를 주는 군종신부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진다. 대부분의 3년, 5년 이상 냉담중인 군인들, 군에 와서야 비로소 하느님께 의탁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는 그들의 마음 안에 이미 하느님께서는 위로와 사랑의 존재로 자리하고 계실 것이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여자의 눈물보다 더 강한 회개의 눈물 앞에선 군종신부뿐 아니라 하느님께서도 꼼짝 못하실 것이다.”

최재영 신부ㆍ군종교구 상무대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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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신부ㆍ군종교구 상무대본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