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28주일 - 저희의 빛이신 주님, 찬미받으소서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입력일 2023-10-10 수정일 2023-10-10 발행일 2023-10-15 제 3363호 1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제1독서  이사 25,6-10ㄱ / 제2독서  필리 4,12-14.19-20 / 복음  마태 22,1-14
세례로써 주님의 자녀가 된 신앙인
천국 잔치에 초대받은 주인공답게
하느님 약속 향해 큰 걸음 내딛길

카스파 루이켄 ‘예복을 입지 않은 손님이 쫓겨남’.

성경은 “인간은 살아서 하느님을 뵐 수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여 선포합니다. 하느님의 빛 앞에 인간은 감출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스스로의 어둠에 절망한 인간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외칩니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이사 6,5)

이사야 예언자가 뵙고 엎드려 떨었던 하느님, 길 가던 바오로 사도를 땅바닥으로 내리꽂으며 두 눈을 멀게 했던 그 강력한 하늘의 빛은 모두 하느님의 위용 앞에 선 인간의 허약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하여 인간은 다만 주님 앞에 꿇어 고백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이 거꾸러지고 엎드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비할 데 없이 강력한 빛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어둠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는 시커먼 어둠밖에 없다는 사실에 진저리치며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주님 앞에 벌거숭이가 되어, 오직 자비에 기대야 했던 며칠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 제 안의 어둠은 두려움이었고 그에 따른 떨림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겁먹은 제 초라함을 아프게 바라보며 마음이 꺾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볼품없는 죄인을 향한 하느님의 약속이 힘이 됐습니다. 친히 그분께서는 제 모든 죄의 너울을 찢어주셨고 환한 빛으로 인도해 주고 계심을 절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정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5)는 말씀에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죄인”임을 상기하되 “하느님께서 굽어 살펴주시는 죄인이며 또한 주님의 돌봄을 받는 죄인”임에 감격하는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만으로 갖은 비판을 감내해야 했고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죽임을 당하는 순교자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바란 것은 오직 자신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이 훼손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힘을 잃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말과 행동을 단속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시키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1베드 2,9)인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이 분명해집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왕족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오직 하느님의 뜻에만 집중하였던 사람, 마침내 처참하게 순교를 당했던 이사야 예언자에게 건네는 ‘선물’로 오늘 독서말씀을 건네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사야 예언자가 살아낸 믿음의 삶이 너무나 고마워서, 그날 회당에서 세상을 향해 선포하신 첫 말씀으로 이사야서를 고르셨던 것이라는 생각마저 했습니다. 또한 오늘 제2독서를 고르시면서 얼마나 신바람이 나셨을까 싶었습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이 다만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임을 가르치는 바오로 사도의 지혜로움에 박수를 치셨을 것만 같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례로써 우리는 빛이신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빛의 자녀가 됐습니다. 어둡고 죄 된 마음은 주님의 빛으로 환해졌습니다. 세상의 맹목적인 욕망을 주님께서 주신 빛으로 밝혀 이겨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곳에서 뵙는 주님께서는 내 얼굴의 눈물을 손수 닦아 주실 것입니다. 손수 내 얼굴의 너울을 찢어내고 환히 웃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 잔치에 어울리는 언어와 행동과 표정을 요구하십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잔치에 참석하는 이들이 그 자리에 걸맞도록 자신을 치장하는 것은 마땅한 예의이니까요. 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주인과 하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처되는 것이 맞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삶이란 잔치의 주최자이신 하느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스스로의 삶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가꾸고 단장할 수 있는 절호의 때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잔치에 합당하도록 자신을 치장하는 시간이 곧 인생임을 감지하게 됩니다.

감사하게도 생명의 빛이신 하느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 삶의 문제가 지닌 실체를 낱낱이 밝혀주고 계십니다. 그 말씀을 알고 있는 우리이기에 죄로 얼룩진 옷을 벗을 수 있습니다. 변명에 급급하고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던 궁색한 삶에서 돌아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딜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이정표가 되어주신 모든 성인의 도움으로 우리는 천국을 향한 길에서 헤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당하게 천국 잔치에 초대된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며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았으며 모든 것이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음에 환호하고 소리 높여 찬미를 드릴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의 심지는 천국에서 아버지를 뵙고 성모님과 예수님을 만날 때를 기억하여 살아가라는 당부라 믿습니다. 늘 말씀에 빗대어 삶을 돌아보며 고쳐 살라는 부탁이라 새깁니다. 아멘.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