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사랑은 사랑을 통해 자란다 / 임경아

임경아 가브리엘라,제1대리구 흥덕본당
입력일 2023-05-30 수정일 2023-05-30 발행일 2023-06-04 제 334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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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알람 소리에 일어나 분주한 아침을 시작한다. 집에서 서울 영등포까지 장거리 출근으로 매일 아침이 바쁘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 짬짬이 광역버스 도착 시간을 본다. 서둘러 나왔지만 예상과 다르게 버스는 이미 정류장에 도착했다. 오늘따라 신호등이 왜 이리도 안 바뀌는 건지….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다 태우고 출발하는 버스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본다.

어? 그 순간 갑자기 멈추는 버스. 무슨 일이지? 앞문이 스스르 열린다. 나를 위해 멈춰서 기다리고 있다. 어찌나 반가운지. 열심히 뛰어가 버스에 올라타며 버스기사님께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기사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집 냉장고 한쪽에는 노란색 포스트잇에 쓰인 메모 한 장이 붙어있다. 코로나19로 아이들 학교는 원격수업으로 바뀌었고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던 시기. 온 가족이 집안에서 예민하게 하루를 보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바로 위층에서 어찌나 쿵쿵 뛰는지….

관리사무소를 통해 간접적으로 여러 번 주의를 줬으나 조심하지 않는 모양이다. 층간 소음이 민감한 문제이기에 고민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정중히 쪽지를 남겼다. 다음날 현관 문 앞에 노란색 포스트잇 메모가 붙어있다.

“보내주신 쪽지,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저희가 생각해도 최근 너무 예의 없이 지낸 것 같아요. 요즘 같은 상황에 좀 더 신경 써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더 주의하고 조심히 지낼게요. 더불어 이렇게 쪽지로 정중히 요청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웃을 잘 만나 이렇게 메모로 이야기 나눌 수 있어 감사히 생각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또 불편하실 경우 연락주세요.”

그 당시에는 민감하고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서로 주고받은 메모는 기분 좋은 추억이 됐다. 지금도 냉장고 문을 열다가 가끔 노란색 포스트잇을 보면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8항에서 “이웃 사랑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중략) 사랑은 사랑을 통하여 자랍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바라본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사랑을 알려주시고자 나와 함께 하신다. 누군가의 선한 마음으로부터 내 안에 사랑을 불러일으켜 주시고 나를 충만함으로 이끌어주시며, 따뜻한 사랑의 체험은 나를 또 다른 이웃에게 사랑이 되도록 이끌어준다.

오늘 하루도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그분과 함께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한다.

임경아 가브리엘라,제1대리구 흥덕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