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학교를 찾아서] (22)대전성모여자고등학교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3-05-30 수정일 2023-05-30 발행일 2023-06-04 제 3346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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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인성교육’ 바탕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 펼치는 학생들
자신의 존재 가치 깨닫고
양심에 따라 무감독시험
앞서가기보다 함께하고
학교와 지역 사회서 봉사

청춘학교 어르신 교육활동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대전성모여자고등학교 청바지봉사단 학생들. 대전성모여고 제공

대전시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대전성모여자고등학교(교장 송미령 유 체칠리아 수녀·이하 성모여고)는 ‘정의와 진리와 사랑을 위해 몸 바칠 여성’을 교훈으로 삼고 있다. 400여 년 전 세워진 예수 수도회로부터 이어져 온 이 가치는 2023년을 사는 청소년들에게 케케묵은 구호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의는 ‘무감독 시험’으로, 진리는 ‘성모 명품 인성교육’으로, 사랑은 타인을 위해 나를 헌신하는 ‘청바지봉사단’으로 구현돼 학생들이 참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진리를 찾기 어려운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를 알려주는 학교. 성모여고는 세상을 비출 참된 인간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었다.

성모여고 학생들이 서로 학습을 지도하는 ‘멘토멘티&스터디그룹’에 참여하고 있다.

메리 워드 셀 학생들이 분리수거장에서 재활용품을 분리하고 있다.

■ 메리 워드 영성 구현

영국인 메리 워드가 1609년 세운 예수 수도회는 최초의 여성 활동수도회이다. 신앙의 옹호와 전파, 영혼 구원을 위한 일이면 그 일이 무엇이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교회에 봉사함으로써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드리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

메리 워드는 여성들에게도 교회 안에서 합당한 지위를 갖고 교회를 위해 일할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선구자였다. 당시 여성은 철저한 봉쇄와 관상을 통해서만 수도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메리워드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들은 소녀들을 교육하고 영성 지도 및 자선 활동을 통해 하느님께 봉사하고자 했고, 영국의 가톨릭 박해를 피해 유럽대륙으로 건너온 영국인 가정의 소녀들을 위한 무료 학교를 열었다.

여성의 존재가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했던 시절, 메리 워드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하느님 앞에 존엄하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인정받기를 원하고 거듭 투쟁하며 자신 안의 하느님 뜻을 펼치는 선구자 모습을 보였다. 1964년 한국에 진출한 예수 수도회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참된 나를 일깨우고 세상을 품고 이웃과 함께 꿈을 이뤄가는 창의적이고 실천적인 성모인을 육성’한다는 사명으로 1969년 성모여고를 개교했다.

■ 하느님이 창조하신 참된 나를 일깨우다

성모여고의 인성교육은 ‘명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는 프로그램뿐 아니라 인성교육 지속성을 위해 학부모 교육을 활성화하고, 가정 및 지역사회가 연계한 교육으로 확장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1학년들은 생활예절을 배우고 성년식을 통해 성숙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는 성취감을 배운다. 2학년은 ‘자신, 주변 세상과 관계 맺기’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에 관해 성찰하며 실천방안을 모색한다. 3학년은 나와 우리, 사회에 대해 성찰하는 ‘선한 영향력’ 수업을 듣는다. 또한 학부모를 대상으로 ‘좋은 학부모 되기’ 프로그램을 운영해 아이들의 교육이 가정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무감독시험은 성모여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교육 중 하나다. 말 그대로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르는 이 방식은 1969년부터 지켜온 전통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시험 때 학급별로 표어를 붙이고 나의 다짐을 작성한다던가 응급상황에 대비해 복도에 감독교사가 상주하는 등 세부 지침에 변화가 있었지만, 교실에 학생들만 있는 상태에서 시험을 보는 전통은 그대로다.

내신 성적이 중요해지면서 무감독시험에 대한 고민이 많았지만 매 학기 진행되는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은 무감독시험에 90% 이상 동의한다고 밝혔다.

교장 송미령 수녀는 “교훈에도 언급된 정의는 하느님과 나, 나와 타인, 나와 자연, 그리고 나와 내가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스스로 양심을 지키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아는 것이 곧 정의이며, 그것이 바탕이 돼야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성모여고 3학년 문지혜(레지나)양은 “내신 성적이 중요하니 1학년 때는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실제로 경험을 해보니 누군가의 감독을 받지 않고 스스로 양심을 지키며 공동체 내에서 신뢰를 쌓아간다는 게 뿌듯하고 좋았다”라고 말했다. 2학년 박지현(엘리사벳)양도 “다른 사람 시선에 의식하지 않고 내 시험지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문제가 더 잘 풀렸던 것 같다”며 “2년째 하다 보니 친구들도 자기 시험에만 집중할 뿐 부정행위를 하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젠 셀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성가를 부르고 있다. 대전성모여고 제공

논에서 모내기를 돕고 있는 청바지봉사단 학생들. 대전성모여고 제공

■ 세상을 품고 이웃과 함께 꿈을 이뤄가다

나를 알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 성모여고 학생들. 세상을 사는 참된 진리를 알게 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청바지봉사단은 함께 걸으며 사랑을 실천하는 대표적 활동이다. ‘청춘은 바로 지금’의 구호 아래 학교 밖으로 나와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동행하고 있는 성모여고 학생들. 교사도 참여하는 청바지봉사단은 선화동 마을 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유기견 봉사활동, 농촌 모내기 봉사활동을 하며 교실 안에서 배운 지식을 지역 사회에서 실천하는 시간을 보낸다. 또한 청춘학교 어르신들에게 국어, 수학, 영어를 가르치는 활동을 통해 인성과 지성을 갖춘 시민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함께한다.

신앙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실천하는 셀(Cell) 활동도 학생들의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청소와 분리수거 등 학교 안 궂은일을 담당하는 메리 워드 셀, 기도모임을 하며 미사 진행을 돕는 성모 셀, 성가 봉사를 하는 젠 셀까지, 성모여고 학생들은 셀 활동을 통해 삶에서 필요한 가치를 배우고 있었다.

메리 워드 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지현(엘리사벳)양은 “쓰레기 분리수거를 돕거나 청소물품을 관리하며 학교 청소의 시작과 끝을 도맡아 하고 있다”라며 “제 노력으로 학교가 깨끗해지고,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앞장서서 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학교생활이 더욱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성모여고는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 두세 명의 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성모여고의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인 멘토멘티&스터디그룹에 참여한 학생들이다.

학생들 간에 학습을 지도하는 이 프로그램은 함께 성장하는 기쁨과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교사는 학생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부족한 학습 관련 문제를 지도하고 활동일지를 체크해 성실히 활동한 그룹에게 상을 준다.

혼자 앞서가기보다 함께 걸었을 때 더욱 행복하다는 것을 학교 안에서 배우는 학생들. 성모여고는 누구도 교육에서 배재되지 않도록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것이 하느님의 가르침이고, 가톨릭학교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