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미리내 성 요셉 애덕 수녀회(상)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3-05-01 수정일 2023-05-01 발행일 2023-05-07 제 334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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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성삼 부름에 응답하며 수녀회 설립

2004년 4월 노곡수련소 성당에서 정행만 신부가 마지막 미사 중 강론하고 있다. 미리내 성 요셉 애덕 수녀회 제공

미리내 성 요셉 애덕 수녀회(총원장 윤정란 안젤라 수녀) 설립자는 정행만 신부(프란치스코 하비에르ㆍ1917~2004)다.

정행만 신부는 1917년 경북 칠곡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일제치하에서 부친 정재문(안드레아)은 왜관에 정착해 사재로 아이들의 교리교육에 힘쓰고 자신의 집을 공소로 내어놓고 교우들을 모아 신앙생활을 하도록 돌보았다. 이러한 부친의 교육을 받은 정행만 신부 역시 처음으로 부임한 경주본당에서 해방을 맞으며 유치원과 공민학교 그리고 진료소를 세웠다.

1929년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한 정 신부는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 최 오틸리아를 생각하며 매일 묵주기도 15단을 바치기 시작하면서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키워 갔다. 1936년 예수성심 신심을 전파하던 마태오 크롤리 신부의 강론에 감화를 받아 매주 목요일 성시간 기도를 봉헌하며 예수성심 신심을 길렀다. 삭발례를 받은 1939년 일제에 의해 학교나 병원 등 교회 사업에서 방해를 받던 한국교회와는 다르게 교회 사업이 훨씬 앞서 있는 일본교회를 견학하고자 일본 여행을 했다. 이 여행을 통해 성녀 삼위일체의 엘리사벳과 천주성삼신심을 받아들이게 된다. 정 신부는 1942년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전날 사제품을 받을 때 자신을 천주성삼께 조건 없이 자신을 봉헌했다.

1950년 2월 정 신부는 천주성삼과 함께 사는 긴밀하고 항구한 일치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르치라는 천주성삼의 특별한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당시 대구대목구장 고(故) 최덕홍(요한) 주교의 허락을 받고 경상북도 상주에서 수도회 설립을 준비했다.

대구와 안동, 부산 등을 다니며 수도회를 시작하려 했으나 정 신부의 건강 악화로 설립은 지연되고 모여든 젊은이들은 ‘정 신부 식구’라는 이름으로 공동체 생활을 했다.

1976년 수원교구장 고(故) 김남수(안젤로) 주교에 의해 미리내본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은 정 신부는 성지개발과 함께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1984년 회헌 인준)와 미리내 천주 성삼 성직 수도회(1991년 회헌 인준)를 설립했다. 정 신부는 연령과 학력의 제한으로 성소를 받지 못한 이들도 각자의 능력에 따라 봉사하며 공동생활과 기도생활을 하는 새로운 수녀회 설립이 하느님의 뜻임을 받아들여 1987년 8월 15일 6명의 자매들로 미리내 성 요셉 애덕 수녀회 설립을 준비했다. 자매들은 미리내성지의 성물판매소를 운영하며 수녀원 자립을 위한 기초를 놓았다.

정 신부는 1996년 수원교구로부터 안성 미양면 갈전리성당과 부지를 매입해 수녀원을 마련하고 1998년 12명의 종신서원자를 배출했다. 2002년 양성면 노곡리에 지청원자와 수련자가 함께하는 양성소를 마련한 후 2004년 6월 6일 선종했다. 2016년 3월 19일 교황청으로부터 회헌 인가를 받고 이용훈(마티아) 주교에 의해 교구설립 수도회가 됐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