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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신약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18) 위선자의 기도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입력일 2023-05-01 수정일 2023-05-01 발행일 2023-05-07 제 334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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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기도하면 훌륭한 신앙인이 되는 걸까요?
긴 기도로 우월감 느끼는 이들
얼마나 길게 기도했는지보다
어떻게 대화했는지가 더 중요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이다. 앞에 앉은 사람과 대화하면서 다른 사람을 신경쓰는 것이 결례이듯, 주님과의 대화 시간에는 오롯이 기도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다.

■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도 기도하고 싶을 때가 생기곤 합니다. 그럴 땐 남들 앞에서 드러내고 기도하는 게 위선적으로 보일 것 같아서 몰래 기도하곤 하는데, 반대로 기도는 좋은 것인데 몰래한다 생각하니 이것도 이것대로 죄책감이 듭니다. 이럴 땐 어떻게 기도하면 좋을까요?

기도할 때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라 하신 주님의 말씀. 청년시절 마음이 순박하기 이를 데 없던 시절에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아라 하신 성경의 말씀을 읽고서 한동안 사람들이 보는 데서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위선자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당 안에서 기도하고 싶을 때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낮 시간에 들어가서 기도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본당사목을 하다 보니 신자분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차라리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술에 취한 모습보다 기도하는 모습이 신자분들 보시기에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생겨서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위선자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을 감수하면서 성체조배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그조차 하기 힘들어하면서 주님을 만나면 한번 따져보아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위선자들처럼 하는 기도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겠습니다. 에고 웨폰(Ego Weapon)이란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자기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앙인에게 있어서 이것은 불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영적인 무기를 소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기도시간을 더 길게 함으로써 심리적인 우월감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영성생활을 물량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으로 지배권을 획득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루 몇 시간이나 기도하면서 서로 비교하고 자기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반면, 적게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문제는 물량적인 기도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부하는 아이들과 비교하면 바로 이해가 될 것입니다. 수험생 아이가 책상 앞에 하루 종일 앉아있다고 성적이 오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집중적인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성적이 좋지 마냥 앉아있기만 해서는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처럼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앉아있는가 보다 어떻게 기도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물량적인 기도에 집착하는 것인가? 영성심리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열등감의 기원이 어떤 것이든 지나친 열등감은 신앙인들에게서는 도덕적 형태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즉 도덕적으로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려는 욕구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도덕적, 종교적으로 하찮은 내용을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강조하는 책략을 씀으로서 자기를 타인보다 높이 끌어올리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영적지도자로 여기는데 이들은 열등감과 야망으로 범벅이 된 진상 신앙인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들에 대한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앞에 앉은 사람과 대화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쓴다면 결례이듯이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 결례를 범하는 기도는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 마태 6,5-6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