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특집] 성지, 체험형 어린이 신앙교육의 장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3-04-25 수정일 2023-04-28 발행일 2023-04-30 제 334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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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선조들 삶의 터전, 직접 보고 느끼며 아이들 믿음도 ‘쑥쑥’

용수성지에 복원 제작돼 있는 라파엘호.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좇는 성지순례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신심행위지만, 동시에 신앙을 위한 교육이 된다. 성인이라면 글이나 자료를 통해서도 충분히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묵상할 수 있겠지만, 아직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어린이들에겐 실제로 보고 만지고 느끼는 직접적인 경험이 신앙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

모든 성지가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특별히 신앙선조들의 옛 삶의 자리를 재현해 놓은 성지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체험형 신앙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신앙선조들이 살아간 삶의 자리를 재현한 성지들을 소개한다.

제주교구 용수성지 – 김대건 신부의 라파엘호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대상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탈 것이다. 어린이들은 자동차, 기차, 비행기 등 탈 것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한다. 교회사 안에서도 그야말로 극적인 모험을 이끈 탈 것이 있었다. 바로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라파엘호’다.

제주교구 용수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표착한 것을 기념하는 성지다. 김대건 신부는 중국 상하이에서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을 향하다 큰 폭풍우를 만나 이곳 용수리 해안에 표착했다.

용수성지의 라파엘호는 길이 13.5m, 너비 4.8m, 깊이 2.1m, 총중량 27.2톤 무동력 목선이다. 배 위에 직접 올라가볼 수도 있어 배를 탔던 김대건 신부의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또 기념관에는 라파엘호를 탄 김대건 신부가 어떤 여정을 거쳤는지를 알 수 있도록 모형과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김대건 신부는 용수성지에서 라파엘호를 수리한 후 금강을 통해 조선 본토에 입국할 수 있었다. 김대건 신부의 조선 입국을 기념하는 전주교구 나바위성당과 대전교구 강경본당도 각각 실물크기로 라파엘호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솔뫼성지 내에 있는 김대건 신부 생가 터.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대전교구 솔뫼성지 - 김대건 신부 생가

위인의 생가(生家), 바로 위인이 태어난 집은 많은 사람들이 찾으며 그의 생애를 기억하는 공간이 되곤 한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성인 김대건 신부의 생가도 그런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에도 등장해 신앙을 막론하고 많은 어린이들이 익히 아는 성인이다.

대전교구 솔뫼성지는 1821년 태어난 김대건 신부를 기리면서 김대건 신부의 생가 ‘대건당’을 복원하고 신자들이 방문해 김대건 신부와 그 가족 순교자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대건 신부의 생가는 그저 김대건 신부만을 기억하는 공간이 아니다. 바로 이 솔뫼에서 신앙을 받아들인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 복자 김진후(비오)는 1814년 해미에서 순교했고, 작은할아버지 복자 김종한(안드레아)도 1816년 대구에서 순교했다.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성 김제준(이냐시오)도 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이들 가족은 솔뫼에서 대를 이어 살며 신앙을 깊게 뿌리내려왔고, 그 신앙을 물려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가 탄생했다.

대흥관아의 옥사를 재현한 대흥옥 외관.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대전교구 대흥봉수산순교성지 – 조선시대 감옥 ‘대흥 형옥원’

순교자들이 순교 전 머물렀던 곳은 바로 감옥이다. 대전교구 대흥봉수산순교성지에는 대흥 형옥원(刑獄圓)을 조성, 그 안에 조선시대 대흥관아의 옥사가 복원돼있다. 형옥원은 형벌을 가하던 곳과 감옥을 아우른 둥근 땅을 뜻하는 말이다. 대흥관아의 옥사는 복자 김정득(베드로)이 처형 전까지 갇혀 있었다. 옥사 내부에는 조선시대 죄인들이 목에 차던 칼과 곤장 등 여러 형구들도 재현돼있다. 또 형옥원 마당에는 조리돌림, 팔주리 등의 고신과 주리틀기와 큰칼 등의 형구, 그리고 사형에 이르는 과정들이 묘사된 그림과 설명문들이 있어 이런 형구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됐는지도 알 수 있다.

성지가 있는 대흥면은 어린이들이 동화책 등에서 자주 보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마을로 성지 인근에는 ‘의좋은형제공원’도 있다. 성지에서는 밤에 몰래 볏단을 주고받던 의좋은 형제와 더불어 복자 김정득과 복자 김광옥(안드레아) 형제의 우애도 배울 수 있다.

배론성지 내에 있는 성 요셉 신학당.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원주교구 배론성지 – 성 요셉 신학당

어린이들은 배움의 터전에서 자란다. 어린아이라면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초등학생이라면 학교에서 배운다. 신앙선조들이 자신들처럼 공부하고 배우던 곳을 찾으면 어린이들이 느끼는 바도 많지 않을까.

원주교구 배론성지에 자리한 성 요셉 신학당은 10대 어린이·청소년들이 사제가 되고자 공부하던 신학교다. 1855년 성 장주기(요셉)의 집에 설립된 신학교는 한국교회 최초의 신학교이자 조선 최초의 근대신학 교육기관이었다. 이곳에서 신학생들은 라틴어, 수사학, 철학, 신학 등을 공부했다.

배론성지는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최양업 신부도 불과 15세라는 어린나이에 신학생으로 발탁돼 유학길에 올라 사제가 됐다. 또 황사영(알렉시오)가 박해를 피해 「백서」를 썼다는 토굴도 있다.

치명자산성지 옹기가마 경당.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전주교구 치명자산성지 – 옹기가마 경당

우리는 순교자들의 생애 중 ‘죽음’을 더 많이 기억하곤 하지만, 사실 순교자들은 죽기 위해 신앙을 선택하지 않았다.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살아가던 신앙선조들은 어떻게 삶을 꾸려나갔을까. 그 대표적인 활동 중 하나가 ‘옹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국내 여러 교우촌에는 옹기를 굽는 가마가 남아있다. 그중 전주교구 치명자산성지에는 안에 들어가 기도도 할 수 있는 옹기가마가 있어 이색적이다.

치명자산성지도 신앙선조의 삶을 기억하면서 성지에 옹기가마 경당을 마련해뒀다. 실제 옹기가마의 모습을 본 따 만들어 옹기가마 안을 부단히 드나들며 옹기를 굽고 나르던 신앙선조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경당이기 때문에 성체조배도 할 수 있다.

치명자산성지 외에도 수원교구 구산성지나 ‘옹기’로 유명한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인 대구대교구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 등에서도 옹기가마를 만날 수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