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하느님이 보여 주신 분 / 심순화

심순화 가타리나(화가)
입력일 2023-04-04 수정일 2023-04-04 발행일 2023-04-09 제 3338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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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성당 두 곳에서 성화 초대전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작업한 복음 그림들을 신자들과 공유하면서 기쁘고 감사한 전시회였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전시를 하면서 제 기억에 깊이 남아있는 관람객이 있습니다.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오시는 분들입니다. 모든 관람객이 제겐 소중하고 감사하지만 특히 불편한 몸을 이끌고 먼 곳에서 전시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은 기억에 남고,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중년 여성이 휠체어를 탄 딸과 함께 전시장에 오셨습니다. 혼자서 움직이기 어려운 딸을 위해 어머니는 천천히 휠체어를 밀며 작품 하나 하나 정성스레 관람을 하셨습니다. 모녀는 전시된 성화를 모두 관람한 후 제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꼭 전시장에서 성화를 보고 싶었는데 실제로 작품들을 보고 나니 많이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휠체어를 타고 전시에 온 딸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교회 내의 한 시설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는 딸은 전시회를 연 경험이 있다는 말도 제게 전했습니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진 저는 “딸이 그린 그림을 보고 싶다”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딸은 휴대전화를 꺼내 저장돼 있던 그림을 제게 보여줬습니다. 그림이 참 맑았습니다. 너무나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 그린 그림처럼 느껴졌습니다. 고개를 들어 딸의 얼굴을 보니 눈빛도 그림처럼 밝았습니다. 저는 딸의 손을 잡으며 “몸이 불편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겨내서 좋은 그림을 많이 그리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뛰어난 재능보다 그림을 아름답게 완성하는 것은 그림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많이 기뻐하면서 어느 신부님께서 주셨다는 묵주를 제게 선물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떠나는 모녀의 뒷모습을 보니 뭉클하면서도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봉사자와 함께 수원에서 오신 분도 기억에 남습니다. 함께 온 봉사자는 “이분이 전시회에 너무 오고 싶어하시기에 모시고 왔는데, 휠체어를 밀면서 오는 길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수원에서 열린 전시에도 오셨다는 관람객은 제 작품이 좋아서 다시 왔다고 했습니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 팸플릿에 인쇄된 작품들을 오려서 벽에 붙여 놓고 보신다”는 봉사자 말에 저는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전시회 소식을 듣고 또 오고 싶어서 먼 곳에서 휠체어를 타고, 봉사자 도움을 받으면서 어렵게 전시장을 찾으신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전시장을 찾아오시는 분들을 보면서 문득 ‘하느님께서 저에게 그분들을 보여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전 장애인 학교에서 봉사도 하고 그림도 그려주던 시절, “그분들이 보는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곳에 가서 전시회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힘들게 오시지 않도록 내가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이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저는 오늘도 그림을 그립니다.

심순화 가타리나(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