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123)교황이 자신의 권한을 제한하며 배운 쓰디쓴 교훈/ 존 알렌 주니어

입력일 2023-04-04 수정일 2023-04-04 발행일 2023-04-09 제 3338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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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동성혼 축복으로 논란인
독일교회 ‘시노드의 길’ 비판
유럽·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는
교황 뜻과 달리 동성애 허용

모리스 웨스트의 소설 「교황의 구두」에는 새로 선출된 교황이 자신의 상황을 상기시키는 오래된 연극을 보며 당황하는 장면이 있다. ‘왕자 관리하기’(The Management of Princes)라는 이 로마 시대 연극에는 누군가에게 절대 권력을 쥐어주고 나서 그가 이 권한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현재 같은 연극에 갇혀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유럽에서부터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교황 권한을 제한하며 생긴 일에 대한 쓰디쓴 교훈을 얻고 있다.

지난 1월 말 AP 통신사는 장문의 교황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인터뷰에서는 특히 두 가지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나는 독일교회가 진행하고 있는 ‘시노드의 길’을 교황이 비판한 것이었다. 당시 독일교회 ‘시노드의 길’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2021년 교황청의 동성혼 축복 금지 등 가톨릭교회의 공식 가르침에 위배되는 결정을 했다.

교황은 윈필드 기자에게 “독일교회의 경험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과정이 엘리트주의적이고 이념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독일 ‘시노드의 길’이 매우 이념적으로 흘러가 위험하다”면서 “이념이 교회의 과정에 개입하면 성령께서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교황은 동성애를 범죄화하려는 시도를 비난했다. 교황은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며 동성애 범죄화는 “정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몇몇 가톨릭 주교들이 동성애 범죄화를 지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교황은 “이 주교들은 유연한 마음을 갖고 회심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두 가지는 교황과 교회의 오래된 입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황의 훈계에도 지난 두 달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자. 3월 초 독일교회 ‘시노드의 길’은 동성혼 축복을 압도적 표차로 승인하면서 마쳤다. 독일 주교 67명 중 2/3가 동성혼 축복에 찬성했다.

독일교회는 ‘시노드의 길’ 결정 내용 실행을 2026년 3월 이후로 미뤘다. 그럼에도 독일의 많은 본당과 심지어 교구에서 동성혼 축복은 이미 흔한 사목활동이 됐다. 즉 독일교회는 교황청의 경고와 교황의 비판에도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라며 일축하는 것이다.

3월 초에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의회가 ‘반동성애 법안’을 압도적으로 채택해 동성애를 범죄화했고, 동성애자라고 밝혀지면 최대 종신형에 처하도록 했다. 또 위력으로 동성애적 행위를 하거나 장애인과 동성애를 하면 가중처벌해 사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더 나아가 숙박업소 주인이 동성 커플에게 방을 빌려주는 등 동성애 관계를 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면 ‘동성애 증진죄’에 해당돼 5년의 징역을 살 수 있다.

우간다 국민의 40%가 가톨릭신자다. 2050년이면 우간다 가톨릭신자는 5600만 명에 이르러, 우간다는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가톨릭신자가 많은 나라가 될 전망이다. 우간다의 반동성애법 제정은 개신교가 주도하고 있지만, 가톨릭신자 의원들도 지지하고 있다. 반동성애법 지지자 중 찰스 오넨은 전직 사제로 정치활동을 위해 환속했다. 우간다 의회 의장 아니타 아넷 아몽도 가톨릭신자다.

한편 이웃한 케냐에서는 3월 초 대법원이 그간 불법이었던 동성애 단체 등록을 허용하자 주교단이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주교단은 성명을 발표하고 “케냐 대법원의 판결은 잘못됐으며, 이 판결로 생명을 파괴하는 동성애를 확대시키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로써 아프리카의 중요한 두 나라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명확한 주문을 무시했다.

물론 이러한 일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가톨릭신자들은 태동기 때부터 교황의 가르침을 선택적으로 무시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주교들을 비롯해 유럽과 아프리카의 가톨릭신자들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교황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놀라울 정도다. 그것도 동성애와 같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주제에서 말이다.

달리 말하면 교회 안에서 치르는 문화 전쟁에서 그 어떤 편도 교황의 지도력을 독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예이츠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모든 것이 무너지고 중심을 잡을 수 없다 / 그저 무정부주의가 세상에 퍼질 뿐”이라는 글을 썼다. 아마 프란치스코 교황 스스로도 오늘날 심경을 이렇게 표현할지 모르겠다.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