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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사회적 난자 냉동’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박은호 그레고리오 신부(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
입력일 2023-03-28 수정일 2023-03-29 발행일 2023-04-02 제 333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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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존엄성 해치고 성공도 장담할 수 없는데…
체외 수정 전제인 난자 냉동
제3자 개입으로 조작·생산돼
인간의 탄생 과정 무시하고
자녀를 소유물로 전락시켜
수많은 냉동 배아 죽음도 초래

최근 서울시는 미혼 여성을 포함한 30~40대 여성에게 난자 냉동 시술 지원을 포함한 난임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첫 시술 비용의 50%에 달하는 200만 원까지 난자 냉동 시술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에 본지는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소장 박은호(그레고리오) 신부의 기고를 통해 난자 냉동이 갖고 있는 윤리적·사회적 문제점을 알아본다.

난자 냉동 시술은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가 생식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을 때 사용했던 기술이다. 냉동 보관된 건강한 난자는 향후 체외 수정을 통한 임신에 이용된다. 그러나 현재는 이러한 의학적인 이유가 아닌 사회적인 이유로도 ‘난자 냉동’이 유행하고 있다. 이를 소위 ‘사회적 난자 냉동’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이미 2014년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여성 직원들에게 난자 냉동 비용을 지원해 주는 정책을 펼쳤다.

우리나라 역시 혼인의 연령이 늦춰지고 있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상황이기에 서울시가 제시하는 해결책이 여성들의 불안감을 다소 완화시켜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적 난자 냉동’은 여러 가지 윤리적·사회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실 사회적 난자 냉동의 유행은 인간의 출산과 자녀를 바라보는 이 사회의 시선을 보여준다. 먼저 난자 냉동 기술은 체외 수정 기술을 전제한다. 체외 수정 기술은 한 인간의 탄생을 부부 사랑의 결실이 아닌, 제3자의 개입으로 조작되고 생산된 결과로 만든다. 이는 자녀의 존엄성에 반할 뿐만 아니라, 자녀를 철저히 누군가의 의지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또한 체외 수정 기술은 수많은 냉동 배아의 죽음도 초래한다.

사실 사회적 난자 냉동 기술은 얼마 전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소위 ‘비혼 출산’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많은 여성들이 언젠가 갖게 될지 모르는 자녀에 대한 바람 때문에 난자를 냉동시키지만, 결혼은 개인의 의지로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결혼을 하지 못했어도 아이를 낳을 권리는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혼과 자녀를 결부시키는 태도는 일종의 고정관념이며 차별적 시선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한 부부라고 해서 ‘자녀를 가질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부부 행위는 출산의 가능성을 지닌 부부 사랑의 표현일 뿐, 아기를 직접 만드는 행위가 아니다. 자녀는 부모와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 인격체이기에 부모의 소유물이 되거나 권리 주장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비혼 출산의 보장은 결국 한 인간의 탄생 과정을 무시하고 아이를 누군가의 바람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락시키게 된다.

사실 많은 여성들의 가임기와 직장인으로서의 전성기는 일치할 것이다. 문제는 사회적 난자 냉동이 활성화된다면 여성들은 가장 젊고 건강한 시기에 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관심은 제쳐두고 회사 일에만 몰두할 수 있다. 한 생명윤리 언론에서는 기업들이 젊은 여성 직원들에게 난자 냉동을 지원하는 이면에는 젊고 유능한 여성들이 자신들의 젊음과 에너지를 오로지 회사에 바치도록 하는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소득의 유능한 여성에 대해서 유급 출산 휴가를 제공하는 것보다 난자 냉동을 지원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난자 냉동이 여성의 출산과 자녀 양육을 보장해주지도 못한다. 2018년 한겨레신문에는 30대 후반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의 난자 11개를 냉동했던 여성이 45세가 되어 자신의 냉동 난자를 통해서 비혼 출산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를 했고 결국 난자까지 기증 받아서 출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난자 냉동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냉동 난자를 사용한 임신은 실패 확률도 크고 개인차도 크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50~60%의 성공률을 보이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현재 정부가 저출산대책으로 시급히 보장해야 하는 제도는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이다. 출산 휴가 이용 실태는 출산 휴가가 도입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고용보험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대략적인 조사에서 얻은 결론은 출산 휴가 사용률이 12%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와 문화의 인간적 진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과 직업이 조화 있게 짜여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씀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진정한 인간적 발전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샘이다.

성경의 코헬렛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코헬 3,1)고 말한다. 여성의 가임기는 여성들이 자녀를 건강하게 임신하고 낳아서 가장 잘 기를 수 있는 나이대에서 자리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출산도 양육도 모두 어려워진다. 앞에서 본 사례처럼 현대 과학이 아무리 발전을 했다고 해도 인간의 출산은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박은호 그레고리오 신부(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