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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진을 연구하는 교회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3-02-27 수정일 2023-02-28 발행일 2023-03-05 제 3333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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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주님의 양떼 보호하기 위한 사랑의 실천 
미사에 참례하려다 화 입은
리스본 대지진의 피해자들
‘하느님이 내린 재앙’이 아닌
과학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

각국 선교지에 지진계 설치해
지진학 연구에 앞장선 ‘예수회’
지진으로 고통받는 이들 돕고
하느님의 영광 드러내려 노력

예수회 프랜시스 톤도르프 신부(왼쪽)와 제임스 매클웨인 신부(오른쪽)가 1923년 워싱턴 D.C. 조지타운대학에 설치된 지진계를 살피고 있다. 출처 세인트루이스대학교

튀르키예와 시리아가 지진으로 인한 피해로 큰 고통을 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지진에 대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가장 가난한 이를 돌보는 교회는 지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고민해왔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지진을 연구해온 교회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리스본 대지진, 지진학의 탄생

1755년 포르투갈의 리스본 대지진은 교회가 지진에 관해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 리스본 대지진은 1755년 11월 1일 오전에 발생, 약 5만 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재해였다. 지진으로 리스본의 건물 85%가량이 붕괴됐고, 쓰나미가 밀려와 해변, 강은 물론이고 도심지까지 휩쓸었다

아직 지진을 과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당시 사람들은 지진을 하느님이 내린 재앙이나 벌이라고 여겼다. 다른 자연재해들도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온 땅이 흔들려 피할 곳조차 없었던 지진은 더없이 두려운 재해였다.

그러나 리스본 대지진은 지진이 하느님이 내린 재앙이라는 생각을 뒤흔든 사건이었다. 리스본 대지진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 주로 신심 깊은 신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지진이 발생한 11월 1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이었다. 지진이 일어난 당시 성당에는 대축일을 맞아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성당을 찾은 신자들이 모여 있었다. 지진으로 리스본의 큰 성당들은 모두 파괴됐고, 신자들은 건물 붕괴와 쓰나미, 화재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하느님은 왜 죄 없는 이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는가 하는 생각은 당시 일어나던 계몽주의를 가속화시키기도 했다.

교회 역시 지진을 막연하게 ‘하느님이 내린 재앙’으로만 여기던 것에서 벗어나 지진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대지진 수습을 주도했던 카르발류 총리는 교회와 함께 지진을 조사했다. 포르투갈 전국 모든 교구는 각 지역의 지진 발생 시각, 방향, 여진 여부, 피해정도, 강과 연못 등의 수위변화 등을 조사해 수합했다. 지진 역사학자 찰스 데이비슨은 이를 두고 현대의 과학적 방식으로 조사된 최초의 지진이라 평가했다. 지진학의 탄생에 교회가 참여했던 것이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특히 예수회 회원들이 지진학을 선구적으로 이끌었다. 예수회 회원들이 세계적으로 지진학에 큰 기여를 해 지진학을 ‘예수회의 과학’이라 일컬을 정도였다.

예수회는 1855년 지진계가 발명되자 필리핀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 선교지에 지진계를 설치하고 지진을 연구해나갔다. 1909년 프레데리크 루이스 오덴바흐(Frederick Louis Odenbach) 신부는 세계 최초로 대규모 지진관측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도 했다. 지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지각의 움직임을 포착해야하는 만큼 대규모 지진관측 네트워크는 지진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909년 당시 예수회는 이미 세계 각국에 20곳 이상의 지진관측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네트워크 구축 이후에는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걸쳐 예수회 교육기관에 동일한 지진계를 설치해 대륙 차원에서 지진의 움직임을 조사했고, 모든 자료를 공유했다. 또 아직 세계적으로 지진 관측이 미비했던 1910~1960년대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지진 관측은 예수회의 역할이 중요했다.

특히 제임스 매클웨인(James Bernard Macelwane) 신부는 지진학자로서 가장 존경받는 예수회 회원이다. 매클웨인 신부는 뛰어난 학자로서 지진학 연구 발전에 큰 공헌을 했고, 미국지진학회와 미국 지구물리학연합 회장을 역임했다. 또 젊은 지구물리학자 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여 세인트루이스대학교에 처음으로 지구물리학과를 창설하고, 1936년 미국의 첫 지진학 교재인 「지진학 입문」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런 매클웨인 신부의 업적을 기려 지금도 미국 지구물리학연합은 36세 미만의 뛰어난 지구물리학자를 선정해 ‘제임스 매클웨인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교회가 지진학 연구에 매진한 이유는 무엇보다 하느님을 위해서, 지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예수회가 세계 각국에 지진계를 설치하고 축복하면서 바친 옛 기도문에는 지진계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사용되길 청하는 기도가 들어있었다. 교회가 지진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켜온 것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 바로 지진으로 고통 받는 주님의 양떼를 보호하고자 하는 사랑의 실천이었던 것이다.

지진에 대한 이해가 미비하던 시절, 많은 사제들이 지진학을 이끌어왔지만, 지진학이 많은 발전을 이룬 현재는 지진학을 연구하는 사제들이 이전처럼 많지는 않다. 그러나 지진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 일은 여전히 교회의 큰 역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월 19일 “예수님의 사랑은 자연재해와 전쟁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로 우리의 마음이 향할 것을 요구한다”며 “고통받는 이들을 잊지 말고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구체적인 사랑을 보여주자”고 튀르키예·시리아에서 발생한 지진 피해자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당부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