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예수의 작은 형제회(상)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3-02-07 수정일 2023-02-07 발행일 2023-02-12 제 333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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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 푸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길 원한다고 하는 신자는 부조리한 것을 꿈꾸는 셈입니다.”

나자렛 예수님을 유일한 본보기로 삼고 세상 끝까지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 길을 나선 샤를 드 푸코 성인. 예수의 작은 형제회는 샤를 드 푸코 성인의 영성을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이룬 수도회다.

성인은 ‘사하라의 사도’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성인이 척박한 사막에서 기도하고 관상한 영성가이자 토착민들에게 하느님을 전한 선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성인은 하느님을 멀리하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삶을 좇으며 살던 청년이었다. 성인은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5세 무렵 부모님을 잃고 외조부의 슬하에서 성장했다. 기숙학교를 다녔지만 학업에도 성실하지 않았고, 엄격한 규율을 싫어해 학교를 도망쳐 나왔다. 또 사관학교를 나와 군인이 됐지만, 방탕한 생활로 계급을 박탈당했다가 다시 회복하는 일도 있었다.

성인은 사하라 사막 탐험을 계기로 하느님께 회심하게 된다. 수년에 걸쳐 사막을 탐험하던 성인은 사막에서 만난 무슬림들이 순박하고 투철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1886년 프랑스로 돌아온 성인은 고해성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기도와 금욕의 삶을 살아갔다. 세상과 떨어져 수도원에서 7년, 나자렛에서 긴 침묵과 노동으로 3년을 보낸 성인은 자신의 성소를 깊이 깨달았고, 프랑스로 돌아와 1901년 사제품을 받았다.

성인은 다시 사하라 사막으로 향했다. 영적인 가난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성인의 선교는 선함과 우정이라는 방법으로 이뤄졌다.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 설교나 자선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그들 곁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생활하면서 예수님의 삶을 보여줬다. 바로 나자렛 예수님이 인간으로 육화해 유다인으로 살아가면서 복음을 전했듯이, 사막의 무슬림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삶으로 복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성인은 투아레그족의 관습, 전통, 언어를 배우면서 토착민들을 존중했고, 토착민들 역시 성인을 존경했다.

토착민들의 친구로 살아간 성인이지만, 성인은 늘 교회 안에서 활동해나갔다.

성인은 자신이 머무는 은수처를 ‘예수 성심의 형제회’(La Fratermite du Sacre-Coeur de Jesus)라 이름 붙이고, 누구나 함께할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오랜 시간 성체조배를 했다. 아울러 자신 이후에 다른 선교사들이 복음 선포에 함께할 수 있도록 프랑스-투아레그어 사전을 만드는 작업도 해나갔다.

성인은 1916년, 프랑스 식민 통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봉기를 일으키고 혼란하던 중 총에 맞아 선종했지만, 성인의 영성은 세계 곳곳에 전해졌다. 성인의 선종 후 성인의 영성을 따르는 20여 개의 영성가족이 생겨나 비그리스도인 안에서, 세속 안에서 관상으로 살아가던 성인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