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위령 성월 특집] 기억돼야 할 숭고한 죽음, 시신 기증 의미와 절차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11-15 수정일 2022-11-15 발행일 2022-11-20 제 3319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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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돌아가며 세상에 남긴 마지막 사랑… 새 생명의 빛 되다
선종 후 조건 없이 신체 기증
의료인 양성·의학 발전에 기여
가톨릭대에 약 3만6000명 등록
위령 미사 등 최대한 예우 갖춰

시신 기증자들이 안장돼 있는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내 참사랑묘역 봉안당. 참사랑묘역에는 2022년 11월 10일 현재 시신 기증자 4876위가 안장돼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홍보팀 제공

■ 시신 기증의 의미, 현황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고 가르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6~110항)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인간의 지상 순례의 끝인 동시에(「가톨릭 교회 교리서」 1013항)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왔다가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가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비롭고 의로운 하느님과 만나는 사건이다.(요한 16,28 참조)

가톨릭교회 안에서 고유한 죽음의 의미를 남은 자들에게 알려 주는 행위라고 볼 수 있는 시신 기증은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선종 후 아무 조건 없이 해부 및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의과대학에 몸을 기증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의술로써 세상을 더 밝게 비추고자 소명을 다하는 의대생과 임상 교수들에게 산교육과 연구의 기회를 제공해 의료인 양성과 의학 발전에 이바지하는 참사랑의 실천이자 궁극적으로 질병 없는 사회 구현에 기여해 생명의 빛이 되는 행위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의 경우 현재까지 시신기증희망자(등록자)는 약 3만6000명에 이른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는 서울시 몇몇 구청으로부터 시신을 수급했다. 수급된 시신은 대부분 무연고자나 행려병자였다. 1992년 이후로는 가톨릭대 의과대학 교목실 주관의 범사회적인 시신기증운동을 통한 시신기증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가톨릭대 의과대학 내 가톨릭응용해부연구소에서 보관하고 있는 시신 기증 자료는 1967년부터 기록된 것이며, 데이터화된 자료를 기준으로 할 때, 2022년 11월 10일 현재 약 6000구의 시신이 교육 및 연구에 쓰였다.

2010년 이후로는 연 평균 300구의 기증 시신이 가톨릭대에 수급되고 있다. 이 수치에 대해 가톨릭중앙의료원 홍보팀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수준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며 “가톨릭교회와 가톨릭대가 시신 기증의 의미와 이를 통한 사랑의 실천에 대해 가톨릭 신자를 중심으로 꾸준히 홍보한 노력 끝에 시신 기증자들이 사랑으로 응답해 주신 덕분”이라고 밝혔다.

유방암으로 투병 중 지난해 7월 6일 선종하며 시신을 기증한 이은미(아녜스·당시 55세)씨의 남편 심재덕(54)씨는 “생전에 사람들에게 정이 많던 아내의 숭고한 뜻과 천주교 신자로서 시신을 기증한 주변 분들을 접하며 저도 사후에 시신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시신 기증 절차와 운용

시신 기증을 위해서는 가톨릭대 의과대학에서 상담을 거쳐 반드시 본인과 가족이 자필로 동의서에 서명해야 한다. 동의서와 주민등록등본 등 서류를 방문 또는 우편으로 접수하면 시신기증등록증을 발급받게 되는데 등록이 완료된 후에도 언제든지 취소가 가능하다. 시신 기증에는 나이와 종교 제한이 없고, 유가족의 반대, 연락두절, 자살 등 사고사,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기증이 불가능하다.

시신 기증 등록자가 선종하면 장례 후 시신을 인계받고 3년 이내 기간 동안 의대생과 수련의, 임상 교수 등이 연구와 교육을 진행한다. 기증 시신으로 가톨릭대 의과대학 학생들의 해부실습교육, 가톨릭대 8개 부속병원 의사들의 해부학 교육 및 술기(術技) 개발, 기초·임상의학 국내외 세미나, 연수회 등이 이뤄진다. 기증 시신은 의학계 종사자들의 해부학 지식 습득에는 물론 임상 연구의 방향성과 타당성을 검토하는 데에도 도움을 줘 의학발전의 토대 구축에 이바지하고 있다. 특수하게 교육과 연구 목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시신 기증자 동의 하에 표본 제작이 진행된다.

가톨릭대 의과대학은 보다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기증 시신 관리를 위해 가톨릭응용해부연구소 등 유관 부서와 주기적인 회의 및 협업을 하고 있다. 또한 복잡한 기증 절차를 간소화, 전문화 하려는 노력도 기울이는 중이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11월 4일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내 참사랑묘역에서 시신 기증자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홍보팀 제공

■ 시신 기증자에 대한 예우와 위령 미사 봉헌

가톨릭대학교는 기증 시신에 대한 교육과 연구가 종료되면 목관, 수의, 종교에 맞는 관보 등 화장 절차에 관련된 물품에는 물론, 화장 후 유골을 모시는 목함, 항아리 등에도 최고의 예우를 갖춰 임시봉안당에 모시고 있다. 입관과 화장에는 유가족을 초청하지 않고, 화장 완료 뒤 유골을 유가족에게 인계한다. 유가족이 유골을 모시기 어려운 경우에는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내 참사랑묘역에 최장 20년까지 안장된다. 참사랑묘역에는 11월 10일 현재 시신 기증자 4876위가 안장돼 있다.

가톨릭응용해부연구소에서는 기증 시신을 다룰 때나 교육 및 연구에 활용할 때마다 참여자들 모두가 실습 전후에 기도문을 낭독하도록 하고 있다. 가톨릭대 의과대학 의학전문대학원은 매년 11월 위령 성월에 용인공원묘원 내 참사랑묘역에서 유가족들과 교직원, 재학생들이 모두 자리한 가운데 위령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아울러 가톨릭대 의과대학 교목실 주관으로 매월 세 번째 목요일 오전 11시30분에 미사를 봉헌하면서 시신 기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별도로 가톨릭대 의과대학 재학생과 교직원들은 매년 3월경 해부 실습을 앞두고 위령 미사를 봉헌한다.

국제성모병원 호스피스팀장 이인순(젬마) 수녀는 “마지막 삶의 끝자락에서 이 세상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시신 기증자들의 마음에 깊이 감동하고 감사드린다”며 “저 역시 지금 여기에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됨으로써 그분들의 선의에 함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