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29주일 - 기도의 무게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입력일 2022-10-11 수정일 2022-10-11 발행일 2022-10-16 제 3314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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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탈출 17,8-13 / 제2독서  2티모 3,14-4,2 / 복음  루카 18,1-8
기도는 내 모습 온전하게 드러내는 것
하느님께 의지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꾸준하고 맹렬하게 기도에 매진하길

피에테르 데 그레베르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1628년)

‘띨룽’ 문자가 왔다는 신호음입니다. 쉽고 간단하게 카톡으로 소통하는 게 대세이지만 연세가 있으신 분들 가운데에 문자나 메일로 소식을 보내오는 경우가 흔하십니다.

“어제는 기도를 하나도 못 바쳤던 게 이제야 생각납니다. 몸이 안 좋아서 종일 들어 누워 지낸 탓이긴 하지만 좀 어이가 없습니다. 약 먹고 밥을 먹는 건 안 까먹었다는 게 정말 죄송하기만 합니다. 문득 컨디션이 좋고 시간도 널널해야만 기도하는 인간이 바로 저네요. ㅠㅠ 그리고 주님께서 묵주기도를 선물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복인지 느꼈습니다. 앓는 중에도 손에 묵주를 쥐고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물론 한 꾸러미도 제대로 바치지는 못했지만, 성모님께서 도와주셨다고 느낍니다. 오늘은 어제 못 바친 기도까지 곱으로 바치겠습니다.”

실례를 무릅쓰고 보내주신 내용을 그대로 베껴 공개합니다. 그날 저릿했던 마음의 감동이 여즉 고였었는데 오늘 주님께서 이르신 기도의 모범이라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날 저는 “주님 안에서 푹 쉬는 것도 기도입니다. 잘 살고 계시니 기쁘게 지내세요!”라는 짧은 답장을 드리며 아쉬웠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에 떠올랐던 카를로 카레토 수사님의 보배로운 고백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열기 가득한 오아시스에서 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탈진이 되었음을 느꼈습니다. (…) 나는 소성당 성체 대전에 쓰러지듯 매트에 몸을 던졌습니다. (…) 어떻게 기도를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 기도하기 위해서 얼마간의 휴식이 필요하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결코 기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내가 그때까지 무수히 바쳤던 바로 그 기도는 자기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부유한 자들, 배부르고 안락한 자들의 기도였습니다. (…) 나는 울었습니다!”

수사님의 주옥같은 고백에 제 마음이 축축했었습니다. 이십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기도의 무게를 이처럼 다정히 일깨우는 글을 만나지 못했기에 다만 옮겨 적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에 장소나 자세에 제한을 두지 않으십니다. 마음에 담겨서 나도 몰래 새어 나오는 탄식의 간절함까지도 헤아리십니다. 교회가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기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과부는 옳지 않은 판결로 인해서 억울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억울함을 지울 수가 없어서 재판관이 귀찮아서 견디지 못할 정도로 질기게 탄원하고 또 해댔었던 것입니다. 천근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숱한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을 것도 같고 치밀어 오르는 울화에 가슴을 치고 또 치며 몸부림을 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날 과부의 청이 단 하나, ‘올바른 판결’뿐이었다는 점이 소중히 다가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기도란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며, 기도를 위해서 뭔가를 예비하고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그저 약한 나를 주님께 온전히 드러내는 솔직함이면 충분하다는 이르심이라 싶습니다. 기도란 결국 땅으로 흘러내리는 마음을 추슬러 주님을 기억하는 것이며 “하늘 거처를 옷처럼 덧입기 위한”(2코린 5,2) 노력이면 충분하다는 뜻이라 믿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제1독서가 전하는 모세와 아론과 후르의 기도 모습이 의미심장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들어 기도하던 모세의 팔이 무거워져서 힘에 부쳤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기도가 때로는 힘들고 무거울 수 있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리고 “아론과 후르가 한 사람은 이쪽에서, 다른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두 손을 받쳐”주는 장면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마음을 모아 합송하는 기도의 모습이라 살펴집니다.

이즈음, 모든 본당에서는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을 위한 기도가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입니다. 간절한 부모님의 기도와 수험생들의 원의에 마음을 모아 함께하는 모습이 아론과 후르처럼 주님께 귀하게 기억될 것이란 약속이 아닐지요. 수험생과 부모님들의 무거운 기도에 함께 거들고 나누기를 진정 원하신다는 의미가 아닐지요. 이웃의 소망에 마음을 합하여 상대의 청원을 함께 외쳐 봉헌하는 모습이 주님의 눈에 진정 아리땁다는 고백이라 듣습니다.

하여 당부를 드립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더 꾸준하고 맹렬하게 기도에 매진하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서 귀찮아하실 정도로 지독하게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 살기 원합니다.

아울러 이제는 부디 기도해도 소용이 없더라는 실망을 치워 내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에 교회가 함께 기도드리고 있으니까요. 기도가 무거워진 모든 분들이 힘을 잃지 않도록 응원하고 있으니까요. 영혼이 메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만 같을 때, 오히려 세상 누군가의 간절함에 힘을 보태는 마음으로 주모경 한 번이라도 바치는 넉넉함을 지니면 참 좋겠습니다.

부디 병환 중에 계신 분들, 삶의 난관에 부딪혀서 망연자실한 분들, 정말 정말로 너무나 분주해서 기도를 바칠 겨를이 없는 분들의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는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시는”(로마 5,26) 성령님이 계시니까요. 이 사제, 성령님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