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이주민·난민과 형제자매로 살아가는 아름다움 / 이미영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9-20 수정일 2022-09-21 발행일 2022-09-25 제 331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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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체류하는 이주민의 수는 200만 명이 넘습니다. 대략 충청남도 인구수와 비슷한데, 한 개의 도를 채울 만큼 많은 이주민이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셈입니다. 곧 이주민이 전체 인구의 5%를 넘게 되는 다문화 사회의 도래를 앞두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이주민을 환대하거나 평등한 동료 시민으로서 대하는 정책이나 사람들의 태도가 아직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개 한국인들이 취업을 꺼리는 저임금의 열악한 일터에서 일하는데, 차별이나 인권침해를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산업재해나 임금체불을 당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민이나 난민은 최소한의 인간 존엄도 위협받을 때가 많습니다. 이주민들을 저개발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등 시민처럼 취급하거나 우리의 자리를 탐내는 ‘침략자’ 또는 우리가 구축한 사회안전망을 위협하는 ‘파괴자’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일례로 얼마 전 정부에서 외국인 건강보험 자격조건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일부 언론에서는 ‘먹튀’나 ‘무임승차’를 막는다며 마치 이주민들이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것처럼 자극적으로 표현하여 혐오를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정작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4년 동안 계속 흑자로,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9월 마지막 주일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지내는데, 올해 발표된 제108차 교황 담화문은 ‘이주민과 난민과 함께 미래 건설하기’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담화문은 이방인을 침략자나 파괴자가 아니라 새 예루살렘의 성벽을 흔쾌히 쌓아가는 일꾼으로 여기고, 선물을 지닌 이방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성문을 활짝 열어두는 이사야 예언자의 전망(이사 60,10-11 참조)을 전하면서, 역사적으로 이주민과 난민은 우리 사회의 사회적 경제적 성장의 토대가 되어 왔고, 문화적 영적 성장의 기회와 세상의 다양성이 주는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는 기회를 우리에게 준다고 일깨웁니다.

고령화가 심각했던 서구 사회 중에는 이주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산업과 문화 발전에 활기를 되찾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인구소멸을 우려하던 지역에 이주민들이 자리 잡으면서 지역이 다시 살아나고, 학생 수 감소로 분교나 폐교가 될 작은 학교들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독실한 이슬람 신도인 이주민과 사귀게 된 한 천주교 신자가 그들의 깊은 신앙심과 매일의 신앙실천을 보면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했던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이주민이나 난민을 그저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어려운 이웃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요 형제자매로 환대하면서 그들의 종교나 문화를 존중하고 서로 배우는 상호문화 이해가 이뤄진다면 우리 사회와 문화가 더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올해 발표된 ‘2021년 국민 다문화수용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령이 낮을수록, 특히 청소년층에서 다문화수용성이 높게 나타납니다. 친구나 학교 학생으로 이주민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청소년들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는데, 이주민과 직접 만나는 경험이 늘어날수록, 또 그들과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청소년들의 설문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세계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전쟁·환경오염 등 지구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라는 질문에 87.7%가 찬성한 점입니다.

다문화에 열려 있고 세계시민으로서 책임감도 높은 우리 청소년들이 이주민 친구들과 함께 이끌어갈 한국 사회의 미래에 희망을 품으며, 올해 담화문에 담긴 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기도해 봅니다. “주님, 저희가 형제자매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닫게 하소서. 아멘.”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