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유흥식 추기경 서임식 특집] 새 추기경 서임 취지와 의미

이탈리아 로마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08-30 수정일 2022-08-31 발행일 2022-09-04 제 330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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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쇄신 추진하는 교황의 가장 가까운 조력자 역할 기대”
19명 새 추기경과 함께 서임
유 추기경 두 번째로 호명돼
비레타·추기경 반지 수여받아
아시아교회 전체 위상도 높여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8월 27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추기경 서임식 모습.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의 서임식은 환희와 감격이 순간이었다. 유흥식 추기경의 서임식은 8월 27일 오후 4시(현지 시각)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열렸다. 유 추기경은 지난 5월 29일 함께 임명된 19명의 추기경들과 함께 이날 추기경단에 들게 됐다.

서임식이 열린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대전교구장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유덕현(야고보) 아빠스를 비롯한 한국교회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등 수백 명이 자리해 숨을 죽인 채 영광의 순간을 지켜봤다.

■ 유흥식 추기경 두 번째로 호칭

유 추기경 서임식은 입당송으로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로 시작하는 마태오복음 16장 18-19절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장엄하게 울려 퍼지면서 시작됐다. 복음(루카 12,49-50) 낭독에 이어 교황의 훈화가 이어졌다. 교황은 ‘하느님 사랑의 불을 모든 이에게 전하자’는 취지의 훈화에서 “사도적 열정을 지니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증인이 돼 달라”고 요청했다.

교황은 계속해 새 추기경 서임의 취지를 “이 형제들이 더욱 가까운 유대로 베드로좌에 일치되고 로마 성직자단의 일원이 되며, 우리 사도 직무에 더욱 긴밀히 협력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새 추기경의 임무에 대해서는 “추기경으로 임명된 이들은 로마를 비롯해 더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서 그리스도와 그분 복음의 두려움 없는 증인이 될 것”이라고 당부하며, 전능하신 하느님과 사도 성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교황의 권위로 새 추기경들을 거룩한 로마 교회의 추기경으로 서임하고 선포했다.

교황은 서임 선포에 이어 교황청 경신성사부 장관 아서 로시 추기경의 이름을 첫 번째로 불렀고 바로 이어 두 번째로 유흥식 추기경의 이름을 불렀다. 새 추기경들에게 맡겨진 직무도 선포했다.

교황은 일어서 있는 새 추기경들에게 교회에 대한 충성을 서약할 것을 요청했고 새 추기경들은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한 뒤 ▲교황과 그 후계자들에 대한 충성과 순명 ▲말과 행동으로 가톨릭교회와의 친교 ▲교회에 봉사하도록 부름받은 임무들에 대한 성실하고 충실한 수행 등을 약속했다.

유흥식 추기경이 수여받은 추기경 반지.

■ 추기경의 상징 비레타와 추기경 반지 수여, 명의본당 지정

교황은 새 추기경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추기경 품위의 상징인 빨간색 사제 각모 비레타(biretta)를 주케토(반구형 모자) 위에 씌워 주며 “이 모자는 여러분의 그리스도교 신앙의 증진과 하느님 백성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그리고 거룩한 로마 교회의 자유와 전파를 위하여 피를 흘리기까지 용감하게 행동할 준비가 돼 있음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에 대한 추기경의 사랑이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사랑으로 굳건해짐을 뜻하는 추기경 반지를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줬다.

전 세계 모든 추기경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을 보좌하므로 로마 시내 본당의 주임사제를 맡는다는 관례에 따라 서임식 중 각 추기경들에게 명의(titular) 본당 지정 칙서가 수여됐다. 유흥식 추기경은 로마 몬타뇰라(Montagnola)에 위치한 착한 목자 예수(Gesu Buon Pastore) 본당 명의 부제 직함을 받았다. 서임식 후에 새 추기경들은 교황과 함께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을 예방했으며, 교황청 사도궁으로 자리를 옮겨 서임식에 참석한 성직자, 가족, 친지 등과 인사를 나눴다.

■ 복음 전파를 최대의 사명으로

유 추기경 서임식에 참석한 염수정 추기경은 이번 추기경 서임의 의미를 일련의 교황청 부서 개편 작업과 연관시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복음 전파를 최대의 사명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셨다”고 밝혔다.

교황은 2013년 즉위 이후 지속적으로 교황청 부서 개편을 추진해 왔고, 새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가 지난 3월 19일 반포돼 6월 5일부터 실행에 들어갔다. 「복음을 선포하여라」 실행에 따라 성직자성은 성직자부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성직자부 장관인 유 추기경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모든 주교와 사제, 부제, 신학생, 신학생 지망자의 삶과 영성, 교육을 관할하는 중요한 직무를 수행한다. 교황청 부서 중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황청을 방문하는 성직자들이 필수적으로 성직자부를 방문하는 이유다.

유 추기경 자신도 “사제 쇄신 없는 교회 쇄신은 있을 수 없다”는 말로 보편교회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유 추기경은 이번 서임식을 통해 복음 전파를 최대의 사명으로 삼아 교회 쇄신을 일관되게 추진해 온 교황의 가장 가까운 조력자로서 위치를 더욱 분명히 하게 됐다고 이해할 수 있다.

추기경 서임식 후 교황청 사도궁에서 성직자부 소속 성직자와 직원들이 유흥식 추기경(오른쪽)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 높아진 한국교회 위상

유 추기경은 한국인 성직자로서는 1969년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2006년 고(故)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 2014년 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네 번째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한국교회는 8년 만에 추기경 서임이라는 경사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앞선 김수환·정진석·염수정 추기경이 모두 서울대교구장 재임 중 추기경에 서임된 것과 달리 유 추기경은 교황청 부서 책임자인 장관 직책 수행 중에 서임된 점에서 특징을 지닌다. 한국인 성직자가 교황청 장관을 맡은 것은 현재까지 유 추기경이 유일할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교황청 내 아시아 출신 부서 책임자가 드물다는 면에서 유 추기경 서임은 한국교회는 물론 아시아교회 전체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 추기경은 서임식 당일 오전 10시 교황청 공보실(Holy See Press Office)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가톨릭신문 등 한국 교계 언론과 별도의 인터뷰 시간을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유 추기경은 “미국, 프랑스, 남미 등 여러 언론들이 이번에 서임된 추기경 20명 중 아시아 출신이 6명이나 배출된 것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며 “아시아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문화나 인종, 언어 등이 다양하기 때문에 아시아를 어느 곳보다 더불어 살아가는 대륙으로 만드는 데 나를 포함한 추기경들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추규호(루카) 주 교황청 한국대사도 서임식 참례 후 “가까이에서 바라본 교황님과 유 추기경님은 서로 영적 유대가 강한 분들”이라며 “유 추기경님 서임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발전, 나아가 한반도 평화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탈리아 로마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