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번아웃’이 올 수밖에 / 김미소진

김미소진 마리아,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
입력일 2022-08-30 수정일 2022-08-30 발행일 2022-09-04 제 3309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전시가 끝나고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전시 철수부터, 방 대청소, 잡지 원고 마감과 학원 숙제까지 해야 할 일이 끊이지 않았다. 전시로 인해 쌓였던 피로는 쉽게 가시지 않고 오히려 누적되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일일까? 작가가 되기 전에는 그저 그림 그리는 일이 재미있었다. 학교 수업 시간에 교과서 끄트머리에 낙서하는 것이 내 삶의 낙이었고, 누군가 내 그림을 어떻게 평가할지 두렵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돈을 벌다 보니 그토록 꿈으로 여겼던 일들이 그렇게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작가 지망생은 ‘전시’나 ‘작품 출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슴이 설렐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이 현실이 되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만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괴롭고 고된 시간도 꿈이라는 단어에 포함되는 것이다. 사실 그런 힘들고 지친 기분으로 요 며칠을 보냈다. ‘번아웃’이 온 것이다. 그리고 온통 예민해져 어제는 가족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다.

왜 번아웃이 온 걸까 생각해본다. 물론, 전시를 진행하는 동안 아주 바빴다. 전시 물품을 주문하고, 전시물을 설치하고, 전시장에 온 관람객들에게 내 작품을 소개해야 했다. 전시가 끝나고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적으로 지친 것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메마른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한 달 전부터 기도를 소홀히 했다. 가족끼리 하는 저녁 기도 외에 혼자서는 기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저께는, 가족 기도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더 길어지자 피곤했는지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평소에는 가족과 함께 성경 말씀을 읽고 나눔을 하는 시간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졌다.

며칠 전, 버스를 타고 가다 성모님께 힘들어서 투정을 부리며 요즘의 나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을 들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마음속에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미소진아, 나는 너를 무척 사랑한단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너는 기도해야만 한다.”

그때는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이제는 정말 성모님 말씀을 되새기며, 다시 마음을 잡고 기도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아침, 오늘의 독서와 복음을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묵상하던 시간이 간절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기도로 무장하지 않으면 스트레스에 취약해지고 별것도 아닌 일에 과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 무엇도 기도보다 중요한 일은 없는 것 같다. 하루의 중심을 하느님께로 두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께 의탁하고 그분의 힘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작품을 만들기 이전에, 내가 먼저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을 기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과연, 기도해야 할 때이다.

김미소진 마리아,제2대리구 분당성요한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