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반지하를 먼저 덮친 재난] 햇볕 한 줌 닿지 않는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박민규·염지유 기자
입력일 2022-08-16 수정일 2022-08-17 발행일 2022-08-21 제 3307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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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지상으로… 누가 이들을 끌어올려 줄까
8일 폭우로 반지하 거주자들 사망
재해에 먼저 피해 입는 취약계층 
외신들, 영화 ‘기생충’에 빗대 보도

대피소로 활용하려 지하층 허가
값싼 집 찾던 이들이 살기 시작
2020년 전국 32만 여 가구로 집계

침수 피해를 입은 사당동 일대 반지하 주택 현장. 강북구 새마을회에서 나와 복구를 돕고 있다.

지난 8월 8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쏟아진 폭우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에서 거주하던 일가족 3명과 동작구 반지하에서 탈출하지 못한 시민 1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우 때마다 들려오는 소식이다. 천재지변 앞에서 가장 피해를 입는 이들은 결국 취약계층이다. 특히 평소 빛도 제대로 쐬지 못한 반지하 주민들은 많은 비가 올 때마다 집이 물에 잠기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반지하라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들여다본다.

반지하의 그늘

이번 비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서울 동작구 사당동과 관악구 신림동을 찾았다.

좁은 사당동 골목길 한편에 줄지어 쌓여 있는 젖은 물건들은 간밤의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케 했다. 발밑으로 보이는 반지하에서는 아직도 수해 복구를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산산조각 난 창문과 부서진 문. 아찔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반지하 건물의 주인 하씨는 “폭우로 하수가 역류해 순식간에 가슴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천장까지 물이 차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받은 양수기 3대로는 역부족이라 사비를 들여 양수기를 추가로 구입하기까지 했다. 하씨 집에 살고 있던 반지하 주민 5세대는 다행히 탈출에 성공해 모두 숙박업소로 대피했다.

옆집 반지하에 거주하던 이씨는 불과 2달 전에 이사했지만, 이날 이씨 집 전체가 물에 잠겨 물건은 고사하고 겨우 몸만 빠져 나왔다.

이들은 여름철 장마 때마다 몇 차례 크고 작은 피해를 입으며 구청에 하수구 관리 대책을 내달라고 주기적으로 민원을 넣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대통령과 국회의원 몇몇이 인근 수해 지역을 방문해 잠시 상황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관악구 신림동 삼성산시장에서 50년 가까이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홍종록(토마스 아퀴나스)씨도 이번 비로 피해를 입었다. 무릎까지 물이 차 전산이 마비되고 일부 약품들을 버려야 했다. 홍씨는 “20년 만에 다시 이런 일을 겪게 돼 참담한 마음이다”며 “이 지역은 낙후된 주택들, 특히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반지하 방이 많아 홍수가 날 때마다 큰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은 이번에 발생한 반지하 거주 일가족 3명 참사 전, 이미 2001년에도 큰 아픔을 겪었다. 당시 장대비로 도림천이 범람해 침수로 6명이 사망하고 떠내려 온 차량이 가스통을 들이받아 발생한 화재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때도 피해자 대부분이 반지하 거주자였다.

주요 외신들은 이런 상황을 영화 ‘기생충’에 빗대 보도했다. 참사가 있었던 다음 날인 9일 BBC는 “이 집은 오스카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반지하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며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주인공 가족이 폭우로 인해 집에 들어찬 물을 필사적으로 퍼낸 모습을 연상시키지만 현실에서의 결말은 더 최악이다”고 평가했다.

8월 8일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사당동 반지하에서 올려다본 계단과 지상.

50년간 이어온 반지하

우리나라 반지하 역사는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 개정된 건축법 제22조에서 ‘건축주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도 및 규모의 건축물을 건축하고자 할 때에는 지하층을 설치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이는 남북 간 대치 상황에서 지하층을 대피소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 지하 공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서울에 살 곳을 찾아 값싼 지하로 들어갔고, 정부는 이를 제도화하기 시작했다.

1984년 12월 건축법 개정으로 지하층의 요건이 완화됐다. 기존의 지하층은 한 층의 3분의2 이상이 지표면 밑으로 묻혀 있어야 했지만, 규제 완화로 반 이상만 묻히면 지하층으로 봤다. 말 그대로 반지하다. 1980년대 후반에는 다세대·다가구 건물에도 반지하를 허용하면서 더 많은 반지하 주택이 지어졌다.

1990년대 초반까지 다가구주택의 층고는 4층 이하로 규제됐는데 지하층을 활용하면 사실상 5개 층을 개발할 수 있었다. 결국 경제적 원리, 즉 건축주 입장에서 지하층은 수익을 얻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서 반지하는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오는 근로자나 사회초년생, 1인 가구 등 저소득층이 도심에서 머물 수 있는 값싼 주거공간의 대명사가 됐다. 수익구조의 메커니즘으로 정착된 반지하. 하지만 이 구조가 반지하 거주민들의 인권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폭우와 폭염 등 기후변화를 동반한 자연재해 앞에서 이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있다.

이에 2012년 건축법을 개정하고 반지하 주택 신규 건축허가를 제한하도록 했다. 건축법 제11조에는 ‘상습적으로 침수되거나 침수가 우려되는 지역에 건축하려는 건축물의 지하층 등 일부 공간을 주거용으로 사용하거나 거실을 설치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인정될 경우’ 건축위원회 심의로 건축을 불허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건축허가 자체를 완전히 금지하는 규정이 아니다 보니 이후에도 반지하 주택이 전국적으로 약 4만 가구가 건설됐다.

정부 정책의 명암

서울시는 이번 폭우로 다시 한번 대책을 내놨다. 지난 10일 폭우 피해 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지하·반지하 주택에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의 용도’를 전면 불허하도록 정부와 협의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반지하 주택을 급격하게 줄일 경우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도시연구소 이원호 책임연구원은 “서울시가 이번에 발표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반지하라는 주택 유형을 없애겠다는 것이지 거주하는 사람들의 주거권을 향상하겠다는 접근은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에 나온 인구총주택조사에 따르면 2020년 전국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는 총 32만7000가구다. 그중 서울 20만1000가구를 비롯해 수도권에만 31만4000가구가 몰려 있다.

주거권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동반되지 않으면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20만 가구의 반지하 거주민들은 더 열악한 주거 형태로 몰려날 수 있다. 비적정주거를 해소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종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사당동 반지하 주택. 들이친 하수로 창문이 완전히 뜯겨 나갔다.

이 연구원은 “신축하는 건물에 반지하를 금지하는 규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문제는 기존의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공공임대 주택 공급물량이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따라서 정비사업을 통해 반지하 유형을 없애겠다는 접근은 매우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주민들이 추가 부담 없이 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지원하겠다고 15일 추가 대책을 내놨다.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를 벌여 임대주택 23만 호 이상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이 역시 정비사업개발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라며 반지하 거주민들 중 지역에서 오래 산 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년층과 1인 가구 등 저소득층이 주를 이루는 이들은 지역 안에서 제공되는 복지서비스에 연계돼 있고, 지역을 기반으로 관계망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이 연구원은 “관계망이 형성된 지역 내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역 내 기존 건물을 매입해 활용하는 매입임대주택사업에도 더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하에서 지상까지

영화 기생충에서 비가 거세게 내리던 날 반지하에 살던 주인공 기택네 집은 침수되고 하수는 역류한다. 반면 고지대에 살고 있던 박 사장네는 무슨 일이 일어났냐는 듯 정원에서 파티를 연다. 극명하게 묘사한 영화적 요소지만, BBC의 보도처럼 현실의 결과는 더 잔혹했다.

교회는 이미 이러한 현실을 우려하며 주거 빈곤층의 인권을 끊임없이 강조해 왔다.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은 “공권력은 주거 빈곤층을 단순한 생산 도구가 아니라 인간으로 여겨야 하며, 가족들을 그들 곁에 불러 합당한 주거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현지 민족이나 지역의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66항)고 밝히고 있다.

교회 스스로의 역할과 중요성도 강조한다. 1987년 발표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교회와 주택문제」에서는 “집 없는 이들을 위한 교회의 투신은 인간적이고 복음적인 투신이며, 그 투신은 또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의 한 표현”이라면서 주거 취약계층에게 손을 내밀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에서 이상적인 접근에만 그치지 말고 행동에 나서자고 촉구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과 관련한 경우에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참여해 우리의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당동 골목 한쪽에 모아져 있는 침수된 물품과 쓰레기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한국이사회(회장 이병욱 요한 크리소스토모, 담당 현성훈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는 이번 폭우로 비 피해를 입은 이들을 교구별로 파악해 모금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이병욱 회장은 “이웃 사랑 실천은 먼저 관심을 갖고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며 “본당 내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갖고 이들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한 구역·반모임을 지금보다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실질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에 누가 소외되고 고통받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서울 대학동 내 고시촌에서 취약계층과 함께하고 있는 ‘참 소중한…’ 센터 담당 이영우(토마스) 신부는 “실제로 교회 안에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많지만, 이들은 성당에 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능하고 죄악시 여겨지는 분위기가 교회 내에도 은연중에 있다는 것이다.

이 신부는 “지하에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번 폭우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반지하 거주민 중 드러나지 않은 교우들도 많을 것”이라며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평소에 가난한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가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맺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하에서 지상까지의 거리는 몇 계단만 오르면 된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서 한 계단도 내딛지 못하고 지하에 묻혀버린 이웃들이 생겼다. 더욱이 이런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또다시 반복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많은 변화를 꾀하고 있고 교회도 계속해서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들의 인권이 올라와야 할 계단은 아직 한참 남았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난은 비참, 곧 불의와 착취, 폭력과 불공정한 자원 분배의 소산입니다.… 반대로, 우리를 해방시키는 가난은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본질에만 집중하는 책임 있는 결정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가난한 이들은 우리가 자선을 베푸는 대상이기 이전에, 우리를 불안과 피상성의 덫에서 해방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중)

박민규·염지유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