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성모 승천 대축일 특별 기고] 신화를 넘어 신앙으로: 성모 승천 교의의 배경과 의미

입력일 2022-08-10 수정일 2022-08-10 발행일 2022-08-14 제 330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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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렀음에 대한 고백이며 희망의 표징
성경·성전 근거로 성모님 생애 탐구
지상 생애 마지막에 올림 받으심은
하느님 백성의 믿음에 대한 격려

구원사 안에서 협조자 역할에 주목
시련과 의구심 이겨낸 믿음의 끝이
구원이라는 확신 갖도록 일깨워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성모승천’.

“원죄 없이 잉태되신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께서는 지상 생활을 마치신 다음 영혼과 육신으로 천상 영광에 들어올림을 받으셨다.”(비오 12세 교황, 교황령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

주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에 올림을 받으심(몽소승천)을 선언하는 성모 승천 교의뿐 아니라 평생 동정, 원죄 없으신 잉태 등 성모님에 관한 교의는 오늘 많은 사람에게 신화적으로 들리거나 무의미하게 다가온다. 다른 한편 과도하고 그릇된 성모 신심은 교회 안에 많은 혼란을 가져오기도 한다. 오늘날 성모 승천 교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수원가톨릭대 교수 한민택(바오로) 신부의 기고를 통해 성모 승천 교의 선포의 배경과 그 의미를 알아본다.

성모 승천 교의의 특수성

교의는 대체로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단 등에 의해 제기된 문제에 답하는 형식으로 형성되어 왔다. 초세기 공의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그릇된 주장을 펴는 이단에 맞서 가톨릭교회의 정통 신앙 교의를 수립하였다. (예: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그런데 1854년 선포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의와 1950년 성모 승천 교의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 대한 찬미의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 교의의 이해를 위해서는 이단과의 논쟁이 아닌 교회 내·외적 상황과 선포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성모 승천 교의가 선포되기까지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성경과 교부들의 확실한 증언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 전승 안에 성모 승천에 관한 언급이 없던 것은 아니다. 성경과 성전을 근거로 성모 승천에 관한 여러 전승이 존재했으며, 신학자들도 열띤 토론을 행했으며 전승을 바탕으로 다양한 신학 사상을 개진하였다. 성모 승천 교의 선포에 큰 계기가 된 것은 1854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의 선포였다. 그 후 성모 승천 교의 선언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열렬한 청원과 지지가 있었으며, 비오 12세 교황은 당시 주교와 신학자, 신자들 동의를 물어 자문을 구했다. 이를 토대로 1950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교의의 의의

성모 승천 교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직접적 증언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도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이 교의가 성경과 성전에 근거를 둔 교의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성경과 성전을 바탕으로 성모님의 생애 마지막에 관하여 탐구한 하느님 백성의 영적 여정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성모 승천 교의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마리아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곧 성모님께서 하늘로 오름을 받으심은 그분께서 걸으신 믿음의 여정이 그 마지막 목표인 구원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하늘에 올라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시고 지복직관을 누리심은 지상에서 주님의 어머니로서 사신 믿음의 삶의 당연한 귀결이다. 성모 승천은 성모님의 믿음이 그 목적지에 이르렀음에 대한 고백이며, 하느님 은총의 권능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생애 첫 순간부터 끝까지 성모님의 온 삶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삶이었다.

또한 성모 승천은 하느님 백성의 믿음에 대한 격려이기도 하다.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의 마지막에 하늘로 올림을 받으심은 지금 지상 여정 중에 있는 교회의 운명이 어떠할 것인지 보여주는 표징이다. 성모님 안에서 교회가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인 구원에 도달하고 있음에 대한 보증이기도 하다. 나아가 우리 각자 믿음의 끝이 구원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신화를 넘어 신앙으로

성모 승천에 대한 믿음은 신화와 같은 이야기에 대한 신봉이 아니라, 성모님께서 전 생애를 통해 보여주신 믿음에서 영감을 얻는다. 관건은 역사 안에서 이루시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이며 그분께 대한 믿음, 신뢰요 의탁이다. 성모님이야말로 믿음의 어머니시며, 이것이 그분께서 구원의 역사 안에서 가지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성모 승천 교의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하늘’이 아닌 ‘땅’을 바라보도록 한다. 곧 하늘에 올림을 받으시기까지 성모님께서 사신 지상 생애에 주목하도록 한다. 신약성경은 성모님께서 걸으신 믿음의 길을 아름답게 그려주고 있다. 모호함, 의구심, 시련 속에서 인내하고 말씀에 의탁하며 당신 아드님의 길을 따라 걸었고, 제자들의 여정에 끝까지 함께하셨다. 또한 그분의 삶은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자비하심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루카 1,48ㄴ-50)

자비로운 하느님을 온 삶으로 믿은 성모님은 하늘에 오르시어 오늘의 인류와 교회를 위해 자비로운 하느님께 전구하고 계시다.

희망의 증언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인이 간직하는 희망에 관한 증언이기도 하다. 성모 승천 교의는 믿음의 끝이 구원이라는 것, 그리고 그 구원은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상기시킨다. 교회는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순간부터 승천에 이르기까지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이심을 고백한다. 성모 승천은 성모님께서 누리시는 그 구원이 이미 역사 안에서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교회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널리 전파하기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재촉하고 있다.

성모 승천을 통해 성모님께서 희망의 증인으로 드러날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의 믿음이 시련과 모호함을 이겨낸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역사가 모호하고 시련이 끊이지 않더라도, 은총을 통한 믿음이 구원하며, 우리가 끝까지 견디어내고 항구하게 주님께 의탁할 때 결국 우리가 그 구원에 이르리라는 것을 일깨우고 계시다.

구원의 기쁨

오늘의 한국교회는 신흥종교와 신영성 운동의 도전, 코로나19 감염증의 지속적 위협,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많은 신자가 신앙의 갈등을 겪으며 교회를 떠나고 있다. 신앙에서 구원에 대한 체험과 확신을 얻지 못하고, 믿음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때에 성모 신심의 쇄신은 매우 큰 영적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엘리사벳을 방문하며 부른 마리아의 노래는 오늘날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 우리에게 신앙의 새로운 열정과 믿음의 기쁨을 가져다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6-48)

한민택 바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