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상)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2-07-05 수정일 2022-07-05 발행일 2022-07-10 제 330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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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의 사랑… 보편적 선교에 투신
창립자 복자 마리 드 라 빠시옹.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복자 마리 드 라 빠시옹(Marie de la Passion, ‘수난의 마리아’, 1839~1904)이 창립한 국제 수도회다. 세계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최초의 여자 수도회로서 교황 비오 9세의 인가를 받아 1877년 1월 6일에 창립됐다.

수녀회 회헌은 첫 머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되어 당신의 백성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이 때문에 성부는 우리 모두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변모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회헌이 이르듯,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는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불려 성체조배와 인류복음화에 바쳐진 선교수도회다. 그래서 회원들은 사랑 때문에 당신의 몸을 남기신 예수님의 성체를 조배하면서 그분의 생애를 관상하고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사명에 초대된다.

삼위일체의 사랑에서 샘솟는 보편적 선교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교회의 본질적 정체성이자 소명이다. 수녀회는 그래서 하느님의 계획에 자신을 온전히 개방함으로써 인류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처럼,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보편적 선교에 투신한다.

수녀회는 구세주의 어머니이자 인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길을 따른다. 오직 아버지의 뜻에 스스로를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이, 자신의 전 생애를 “예!”로 응답한 마리아의 온전한 순명과 신앙은 수도자들이 성소를 살아가는 근본적인 신앙의 태도를 보여준다.

동시에 자발적이고 기쁜 가난의 삶을 살았던 프란치스코 성인은 마리아와 같은, 또 하나의 성소의 길의 모범이다. 회헌 52항은 이렇게 말한다.

“프란치스코처럼 우리도 더 큰 사랑을 위하여 가난의 삶을 선택한다. 가난은 우리를 해방시켜주고 하느님께로 온전히 개방시켜준다. 가난은 우리로 하여금 작은 자가 되게 하고 서로 형제가 되게 하며 또한 우리 자신들의 한계를 받아들이게 한다.”

복자 마리 드 라 빠시옹은 1839년 5월 21일 프랑스 낭트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16세에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너를 더 사랑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1860년 12월 글라라회에 입회했다. 이듬해 1월 23일 낭트의 글라라회 수녀원에서 복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제물인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축성하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다.

엄청난 영적 체험 이후 병을 얻고 수녀원을 떠난 복자는 1864년 ‘속죄회’에 입회하고 인도의 선교사로 파견돼 선교지의 관구장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선교지의 복잡한 상황과 본부와의 어려운 통신 사정으로 인한 오해와 갈등으로 선교지의 수도자 20명은 속죄회를 떠나야 했다. 이들은 1877년 1월 6일, 교황 비오 9세의 인준을 받아 마리아의 전교자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1885년에 프란치스코 수도3회에 가입,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로 불리게 된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