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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경제 마인드 공부-자본주의는 의자 뺏기? / 이정철 바오로 신부

이정철 바오로 신부,제2대리구 부곡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2-06-15 수정일 2022-06-15 발행일 2022-06-19 제 329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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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뺏기’에서 의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돈? 땅? 집? 직업? 승진? 사업? 무엇이 됐든 ‘의자 뺏기’라고 한다면 내가 앉은, 혹은 내가 앉아야 할 의자를 누군가가 뺏어갔거나 반대로 누군가가 앉은, 혹은 앉아야 할 의자를 내가 뺏어 앉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내 것을, 혹은 내가 마땅히 가져야 할 무엇을 뺏어간다면 그것은 범죄다. 또한 내가 가질 수도 있고 누군가도 역시 가질 수 있는 것을 내가 갖지 못했다고 해서 내 의자를 빼앗겼다고 하는 것은 피해망상이다.

‘의자 뺏기’가 가능하기 위해선 ‘의자’의 수가 한계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수가 정말 한계적일까? 일단 ‘돈’을 먼저 살펴보자. 1971년 통화의 가치를 금의 가치와 연계시키는 금본위제가 폐지되면서 돈을 무한정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 돈은 계속해서 흘러 들어가지만, 또 계속해서 흘러나오기에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다. ‘땅’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건물을 지으면서 땅 위아래로 새로운 땅을 계속 만들고 있다.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새로운 사업도 생겨나고 새로운 자리도 마련된다.

또 틈새시장이라고 부르는 곳에서도 새로운 ‘의자’는 계속해서 나타난다. 사람들이 하기 귀찮아하는 것, 하기 싫어하는 것, 도움이 필요한 것, 더 편리하기를 바라는 것, 더 좋은 것을 원하는 것에 새로운 의자가 마련된다. 이처럼 사실 ‘의자’의 수는 무한하다. 넘쳐나는 의자를 누가 발견하고 차지하느냐에 따라 주인이 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의자 뺏기’를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바로 진급과 승진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의자의 개수는 점점 줄어든다. 몇몇 사람들은 그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런데 이는 굳이 자본주의가 아니어도 공동체가 형성된 사회라면 반드시 존재하는 형태다. 인류는 공동생활을 시작하면서 피라미드 형태의 조직을 형성해 왔다. 조직은 리스크에 따른 책임과 그에 따른 명령 체계로 피라미드 형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고정형 피라미드냐 아니면 계층 이동이 가능한 비고정형 피라미드냐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누구나 노력만 한다면 계층 이동이 가능한 비고정형 피라미드 구조다. 자본주의에서는 누구나 그 ‘의자’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의자 뺏기’라는 것은 그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삼성전자의 주인이 되고 싶은가? 그럼 돈을 많이 벌어 삼성전자의 주식을 많이 사서 대주주가 되면 된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소공동체, 레지오마리애, 연령회와 같은 기존 모임도 있지만 시대에 맞는 더 많은 모임(의자)도 만들 수 있다. 비슷한 연령대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본당 안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친교를 나눌 수 있게 신자들에게 모임 개설의 자유와 가능성을 열어준다면 시대에 맞는 도시 형태의 새로운 모임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이정철 바오로 신부,제2대리구 부곡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