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유흥식 추기경 서임 의미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2-05-31 수정일 2022-05-31 발행일 2022-06-05 제 3297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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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인정한 ‘친교의 사람’… 전 세계에 한국교회 역할 커져
교황 직접 보필하는 추기경
출신 지역의 위상과도 연결
한국의 아시아복음화 역할
절실하다는 방증으로 해석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임명 직후인 지난해 7월 본지와 대담하는 유흥식 추기경. 유흥식 추기경 임명은 한국교회에 대한 보편교회의 기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유흥식(라자로) 대주교가 추기경에 서임됐다. 이미 지난해 6월 11일,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임명으로 유흥식 추기경 서임은 예견된 일이었다. 교황청 9개 성을 이끄는 장관은 관례적으로 추기경이 맡는다.

유 추기경이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그 자체로 파격적 인사였다. 스스로 “저 자신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였던 유 추기경의 장관 임명은 ‘친교의 사람’이었던 개인적 성품에 대한 평가와 함께 한국교회의 높아진 위상과 아시아교회에 대한 교황의 각별한 관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유 추기경에 의하면, 당시 교황은 “교황청은 친교의 사람이 필요하다”, “주교님은 전 세계 보편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아시아 대륙 출신이다”라고 말했다. 교황은 제삼천년기 보편교회가 주목하는 아시아교회가, 고난과 변화의 시간에 직면한 보편교회에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유 추기경 임명은 교황이 그를 성직자부 장관으로 임명할 당시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던 바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 교황청과의 끊임없는 소통

유 추기경은 195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1979년 현지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983년 귀국 후 대전교구 대흥동주교좌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솔뫼성지 피정의 집 관장, 대전가톨릭교육회관 관장, 대전교구 사목국장,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총장 등을 거쳐 2003년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됐다.

2005년부터 대전교구장으로 직무를 수행해오다 지난해 6월 11일 전 세계 사제·부제의 직무와 생활, 신학교 사제 양성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에 발탁됐고, 이번에 추기경에 서임됐다.

유흥식 추기경(오른쪽)이 2018년 10월 11일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중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CNS 자료사진

유 추기경은 성직자부 장관 임명 이전부터 프란치스코 교황 및 교황청과 매우 가깝게 소통하는 한국인 성직자 중 한 명으로 손꼽혀왔다. 2014년 8월 교황의 방한 역시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참석을 교황에게 요청한 유 추기경의 서한이 계기가 됐다. 특히 유 추기경은 주요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을 알현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성직자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직전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맞아 가난한 나라를 돕는 백신 나눔 운동을 대전교구에서 처음 시작해 한국교회 전체의 나눔 운동으로 확산시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전교구와 한국교회 전체의 이 같은 뜻깊은 운동에 대해 수차례 서한을 통해 “주교님들께서 아낌없이 보여주신 사랑과 형제애에 감동을 받았다”는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유흥식 대주교가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임명 직후인 지난해 7월 12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만나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청와대 제공

■ 한국과 아시아교회에 대한 기대

추기경은 가톨릭교회 안에서 독특한 지위와 명예를 지닌다. 중대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함께 소집되는 때에는 합의체적으로 행동해 교황을 보필하거나, 또는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여러 가지 직무를 통해 교황을 보필한다. 특히 추기경은 교황을 선출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니는데, 종신직이지만 만 80세가 되면 법률상 자동적으로 교황 선거권을 비롯한 모든 직무가 끝난다.

유흥식 추기경은 선종한 김수환(스테파노·1922∼2009)·정진석(니콜라오·1931∼2021) 추기경과 염수정 추기경(안드레아·78)에 이어 한국교회의 4번째 추기경이다. 염 추기경은 만 80세가 되는 내년 12월까지, 유 추기경은 2031년까지 교황을 선출하는 투표권이 있다. 염 추기경 역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교황 선출권을 지니고 있으며 보편교회의 주요한 사목 현안들에 대해 교황을 직접적으로 보필하는 추기경의 지위가 중요한 만큼, 추기경을 배출하는 지역교회는 그만큼 높은 위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추기경의 수는 유럽과 북미 등 서구교회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이후 계속해서 추기경단의 지역별 안배를 변화시켰다. 유럽과 미국 등 서구 교회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교회 통치의 기조를 탈피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강화해 하느님 백성 전체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이는 교황청 구조 개편, 세계주교시노드의 운영 방식의 변화, 그리고 추기경단의 구성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아에서 가장 유력한 지역교회로 떠오른 한국교회의 위상과 그에 대한 보편교회의 바람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에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한 더 큰 몫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유 추기경이 그 소명을 맡을 적임자라는 판단을 이번 추기경 임명을 통해 확인해주었다.

유흥식 추기경이 지난해 8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로마 한인본당 제공

■ 추기경 임명은

서구 중심 임명 벗어나

제삼세계 고려 높아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한 이후 총 7차례에 걸쳐 추기경을 서임하는 추기경회의를 열었다. 현재 추기경 총수는 208명이고 그중 교황 선출권을 갖는 80세 미만의 추기경은 117명이다. 오는 8월 27일 교황 선출권을 지닌 80세 미만의 추기경 16명을 비롯해 21명의 추기경이 새로 서임되면, 추기경은 총 229명이고 80세 미만 추기경 수는 133명이 된다.

단, 교황 선출권을 지닌 80세 미만 추기경 133명 중 금융 스캔들로 인해 지난 2020년 9월 추기경 직무에서 배제돼 재판이 진행 중인 안젤로 베추 추기경을 제외하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 들어갈 수 있는 추기경은 모두 132명이다.

132명 중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임명된 추기경이 11명,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임명한 추기경은 38명,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 수는 전체 62%가량인 83명이다.

전통적으로 추기경단의 구성은 유럽과 미국 등 서구교회에 집중됐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래 그러한 구도는 지속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2013년 이래 교황은 서구교회 중심의 추기경 임명에서 벗어나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제삼세계 지역교회의 추기경들을 대폭 인선했다. 처음으로 추기경을 배출한 국가 교회가 20여 개국에 달한다.

이번 추기경 임명에서도 그러한 기조가 드러난다. 총 21명의 새 추기경 중 유럽이 8명으로 가장 많지만, 아시아 6명, 중남미 4명, 아프리카 2명, 북미 1명 등으로 제삼세계 지역교회에 대한 고려가 높았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