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98)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달라질 종교 지형/ 존 알렌 주니어

입력일 2022-03-07 수정일 2022-03-08 발행일 2022-03-13 제 3285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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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정교회 영향력 약화
교회일치운동 새 바람 기대
중동 그리스도인 보호하는
실질적인 대안 모색해야

전쟁은 현상유지를 송두리째 깨버리고 폭력적으로 새로운 현실을 형성하는 등 항상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내놓는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생길 지정학적·외교적·군사적 결과를 분석하고 있는데, 이번 전쟁으로 종교 지형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능성을 추론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선 그동안 간과됐던 것 중에 적어도 세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먼저 이번 전쟁은 전 세계 정교회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전 세계에는 15개 독립된 정교회에 약 3억 명의 신자가 있다. 이 중 러시아에 1억 명, 우크라이나에 4000만 명이 살고 있다. 러시아정교회는 우크라이나를 신앙의 요람이자 ‘교회법적 관할지’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는 세 개의 독립된 교회가 있는데 이 중 하나만 러시아정교회에 속해 있다.

이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정교회 신자들은 러시아정교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정교회는 러시아군의 침공을 강하게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성명서는 홈페이지에서 삭제됐다. 게다가 정교회에서 러시아정교회와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가 이끄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 사이의 대립도 불거지고 있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는 더 진보적이고 친서방 성향을 보인다.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다방면에서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정교회는 더 보수적이고 교황청과 대립각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는 정교회 전통 안에서 ‘동등한 가운데 첫 번째’(first among equals)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정교회는 신자 수와 재정,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전 세계 정교회 신자들의 반발을 고려하면,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에 힘이 더 실릴 것으로 보인다.

종교역사가 다이애나 버클러 바스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은 모두 종교와 관련된 것이고, 이후 동유럽의 정교회를 비롯해 아프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 정교회의 지형을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로 이번 전쟁은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의 관계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교황청과 일치하고 있는 23개 동방교회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의 운명이 달려있다.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는 통합되고 독립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 일어서기 위해 오랫동안 학자와 활동가를 길러내며 국정에 영향을 줘 왔다. 이들 그리스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대개 친서방 성향을 보이며 러시아에 반대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한 항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이 때문에 러시아의 공격이 지속된다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 때부터 러시아정교회를 향한 교황청의 정책은 긴장 완화로, 교황청은 최대한 대립을 피해왔다. 교회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라는 두 개의 허파로 숨을 쉬길 바랐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이러한 조심스러운 접근을 이어갔다. 폴란드 출신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반공주의자이며 소비에트연방 해체에도 도움을 줬지만, 러시아정교회는 존중했다.

냉전 시기에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교황청의 이러한 정책에 불만을 표시했고, 이는 지금도 여전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전히 러시아를 침략자로 규정하지 않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푸틴을 겨냥해 비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으로 이러한 교황청과 러시아와의 사이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월 25일 이례적으로 주교황청 러시아대사관을 찾았지만, 러시아에 대한 공개적 비판은 삼갔다. 하지만 교황이 기뻐서 외국 대사관으로 뛰어갔을 리는 만무하다. 아마도 이번 전쟁 후 교황청에는 교회일치운동과 관련해 새로운 바람을 맞이할 것이다.

세 번째로, 현재의 위기는 서구의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도 충격을 줄 것이다. 이들은 푸틴 대통령을 이슬람 급진주의에 함께 대항하는 협력자로 보고 있었다. 특히 중동의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을 보호하고 세속주의에 대항해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가치를 증진하는 방벽으로 여겼다. 만일 이들 보수 가톨릭 신자와 그리스도인들이 푸틴을 꺼리게 된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목표달성을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신앙의 수호자라는 푸틴의 가면이 실제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IS가 발호했을 때 푸틴은 러시아의 힘을 이용해 실제로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the law of unintended consequences)에 따르면 푸틴의 힘이 약해진다면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서방의 지도자들은 이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서방이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푸틴이 오히려 이를 선전거리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번 전쟁으로 전 세계 종교 지형이 달라질 것이고,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는 현재 종교 지도자들의 결단에 달려있다.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