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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28)아이가 성소를 잘 식별하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조재연 비오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
입력일 2022-02-28 수정일 2022-03-02 발행일 2022-03-06 제 3284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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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자유 존중할 필요 있지만
알아서 식별하도록 방치해선 안 돼

엠마오로 가는 길의 예수님처럼
질문 던지고 마음속 갈망 들어줘야

부모가 만난 하느님에 대해 나누며
자녀와 동반하는 영적 동행자 되길

“며칠 전 아이가 “아빠, 내가 신부님이 되면 어떨 것 같아?”하고 물어왔습니다. 아이가 사제가 되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아이의 생각을 알고 나니 부모로서 많은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잘 식별할 수 있도록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화 ‘저 산 너머’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가 어린 수환 형제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 밭에 저마다의 씨앗을 묻어주셨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너희들 마음 밭에는 아주 특별한 씨앗이 심겨져 있지 싶다. 너희 마음속에는 하느님의 씨앗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성소는 우연의 결과도, 결정지어진 운명도 아닌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이 담긴 씨앗과 같습니다. 우리 자녀의 마음 밭에는 하느님께서 어떤 씨앗을 심어주셨을까요?

성소(聖召)는 넓은 의미에서 생명과 사랑의 길로의 초대이며 주님과 맺는 우정으로의 초대를 모두 아우르는 거룩함에로의 부르심을 의미합니다. 성소의 의미를 조금 좁히면 생명 창조의 신비에 동참하도록 초대하는 결혼 성소, 성품성사를 통해 하느님 사랑의 계획에 참여하는 사제 성소, 그리고 하느님께 청빈·정결·순명의 삶으로 자신을 봉헌하는 수도 성소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부르심은 하느님의 큰 계획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계획 안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제, 수도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의 계획을 자각한 이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자신이 받은 부르심을 식별하기 어려워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식별하는 것은 매우 섬세한 과정이기 때문에, 비록 부모라 할지라도 성소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자녀가 알아서 성소를 식별하게 내버려 두어서도 안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소 식별에 대해 말씀하시며 “젊은이들의 자유를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는 동반도 필요합니다. 가족은 그러한 동반의 첫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자녀들이 주님과의 우정 안에서 성소를 잘 식별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동행자, 바로 부모의 도움, 동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동반하는 법은 엠마오로 가는 길의 예수님의 모습(루카 24,13-35)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망과 혼란에 빠진 두 제자에게 다가가 나란히 함께 걸어주시지요. 또 그들에게 삶의 본질을 향한 질문을 던지시고 경청하시며 당신의 경험을 충분히 나누어 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이 하느님을 향해 타오르는 순간, 동행자로서의 역할을 마치셨다는 듯 사라지십니다. 이처럼 부모는 자녀를 이끌기도 하고, 밀어주기도 해야 하지만 때로는 나란히 걸으며 힘을 주기도 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셨듯 질문을 던져 주고 마음속 갈망을 들어주어야 하며, 자신의 경험, 하느님과 나눈 우정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의 갈망이 타오르는 순간, 그리고 성소를 식별해야 할 하느님의 시간에 한 걸음 물러나 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녀가 성소를 잘 식별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사제직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사제직무를 티베리아스 호수에서 폭풍우 치던 밤에 예수님과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화(마태 14,22-33 참조)를 통해 4가지 단어로 표현하셨습니다. 삶의 올바른 항로를 향하여 배를 저어가는 것은 그저 우리 노력에만 맡겨진 일이 아니며, 주님께서 방향이 되어 주시고 도와주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제직은 언제나 도와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삶입니다. 삶은 혼란과 두려움 속에 있으며, 사제로서의 삶도 이 모든 거친 파도를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하신 주님의 초대처럼 사제직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역풍이 사제를 지쳐 쓰러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짓누르는 고립감, 성소의 불꽃이 사그라져 타성에 젖어 버릴 위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을 직면할 때에도 사제는 복음을 전하는데 따른 고통(고단함)을 받아들이고 부활하신 주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파도 한복판에서도 사제의 삶은 찬미를 향해 열려있습니다. 사제는 성모님처럼 믿음을 간직하며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삶이 주님을 향한 찬미의 노래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는 이처럼 자녀가 감사, 용기, 고통, 찬미의 삶의 태도를 갖도록 도우며 하느님께서 심으신 씨앗을 북돋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이 길을 따를 의향이 있는지 자문해보라고 권유할 용기를 낼 수 있고 또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274항.

※자녀, 손자녀들의 신앙 이어주기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 조부모들은 이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서 답하겠습니다.

이메일 : hatsal94@hanmail.net

조재연 비오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