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뷰 / 와우갤러리 신문선 명예관장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01-25 수정일 2022-01-25 발행일 2022-01-30 제 3280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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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손흥민’ 발굴할 문화 운동장 만들고 싶어”
축구 선수·해설가로 유명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예술에 큰 관심
어려운 시절 극복하며 받은 도움
예술 통한 사회공헌으로 갚을 것

지순택 도예가가 만든 ‘달 항아리’ 옆에 선 와우갤러리 신문선 명예관장. 그는 ‘신문선 공간’에 유명작가들의 예술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예술품을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골, 골, 골이에요~”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컸던 전 축구 해설위원 신문선(요한 보스코)씨. 그는 서울 홍익대 인근 서교동에 한국 예술의 발전과 대중화를 목적으로 2019년 와우갤러리를 열고, ‘미술계의 손흥민’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다양한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난 곳은 갤러리도 대학도 아닌, 일명 ‘신문선 공간’. 이곳은 그가 가족들과 20년 넘게 산 집을 유명작가들의 작품과 도자기, 조선시대 반닫이 등 한국적인 멋을 느낄 수 있는 예술작품들로 꾸며놓은 공간이다.

유망한 축구선수였던 그가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생 시절 일본 게이오대학 교환방문이 계기였다. 교환방문으로 친해진 일본인 친구 집에 초대를 받은 신 관장은 그 집에 있던 조선시대 달 항아리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달 항아리의 풍만한 선에서 나오는 풍요로운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며 “그때가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연세대 입학 후 일본을 수차례 오가며 예술적 안목을 키웠다. 그중에서도 도쿄 인근에 있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관은 그가 꾸미고 있는 신문선 공간의 모티브가 됐다. 민예관은 일제강점기 때 야나기 무네요시가 우리나라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조선 공예품을 모아놓은 곳이다.

신 관장은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적인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 공간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신문선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언젠가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권순철(요셉) 작가의 얼굴 작품을 좋아한다.

“축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이겨야만 하는 상황에 제 안의 폭력성도 커졌습니다.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권 작가님의 얼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특히 예수님 얼굴 그림을 보면서 많은 위안을 얻습니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 용돈을 모아 틈틈이 좋은 작품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몰려왔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 운동을 이어왔다. 다행히도 당시 특수목적의 체육학교가 만들어지면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었고, 출중한 실력 탓에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은 것을 잊지 않았다. 받은 것을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잘나가던 축구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고, 마이크를 잡게 됐다.

“20년간 외도를 한 셈이죠. 공부하고 가르치려 선수 생활을 그만뒀는데, 5차례의 월드컵 경기 해설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그러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제 신념을 가지고 해설을 했는데 우리나라에 유리하지 않은 해설이라는 이유로 질타를 받았죠. 떠날 때가 됐다 싶었습니다.”

그는 해설위원 시절 독실한 신자인 아내의 권유로 세례를 받았다. 어려웠던 시기, 신앙의 도움을 받은 그는 원래 계획했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미술관 건립에 전념했다.

“미술도 축구와 같아요.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됩니다. 홍익대 인근엔 제대로 된 미술관도 없고 술과 유흥만이 가득합니다. 예술로 사회적 공헌을 하고 싶은 마음에 갤러리를 지었죠. 제가 받은 사랑이 갤러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고대합니다.”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