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지친 현대인에 위로와 쉼 전하는 바오로딸 혜화나무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1-12 수정일 2022-01-12 발행일 2022-01-16 제 3278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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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축된 신앙생활… 하느님과의 연결고리 단단히 묶어드립니다

갑작스런 신앙생활 공백으로
방황하는 신자들 위해 고민
하느님 사랑 기억할 수 있는
온라인 프로그램 기획 운영

문화·과학 등 다양한 주제로
신앙 재미 전하는 강의 비롯
랜선 피정·릴레이 성경 읽기로
신앙의 활력 되찾도록 도와

2020년 10월, 혜화나무 지하 1층 갤러리에서 박향숙(파치스) 수녀의 ‘말씀을 담은 그림이야기’ 피정을 개최, 신자들이 하느님과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혜화나무 제공

서울 종로구 대학로12길 38, 대학로 거리에 세워진 복합문화공간 바오로딸 혜화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톨릭 관련 서적과 수녀님이 방문객을 맞고, 2층과 3층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사색의 공간’과 성체조배를 할 수 있는 경당이 마련돼 있다. 조용히 자기만의 공간에서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곳. 혜화나무는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아름다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신앙과 일상 모두 힘들어진 시기, 대학로 거리에 뿌리내린 혜화나무는 영적 피톤치드를 뿜어내며 활력을 잃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 희망과 행운을 염원하며 대학로에 세워진 혜화나무

예로부터 안 좋은 기운을 물리치는 나무라 여겨 사람이 사는 집 근처에 심었던 회화나무. 선조들은 궁궐의 출입구나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이 나무를 심어 액운을 물리치려 했다. 성 바오로 딸 수도회는 좋은 기운과 행운을 가져온다는 회화나무의 상징성이 수도회가 지향하는 사도직의 방향과 일치한다는 생각에 복합문화공간의 이름을 이 나무에서 가져왔다. 회화나무라는 이름에서 따온 ‘혜화나무.’ 신앙의 뿌리를 흔드는 각종 유혹들을 뿌리치고 오직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2020년 9월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구성된 건물은 나무의 형태에서 각각의 의미를 가져왔다. 뿌리에 해당하는 지하 1층에는 콘서트와 연극,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공간이, 나무의 줄기인 1층에는 서원과 카페를 통한 만남의 장소가 마련돼 있다. 2층은 가지에 해당한다.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듯, 2층은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꾸몄다. 묵주와 전례초 등을 만들 수 있는 공방, 신앙과 관련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 책을 통해 신앙의 양식을 채울 수 있는 테이블과 모임방이 있다. 3층에는 모임방과 기도실을 두고, 원하는 이들은 예약제로 성체조배를 할 수 있게 운영하고 있다.

■ 신앙생활의 공백, 어떻게 채웠나?

혜화나무가 문을 연 2020년은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런 일상의 변화에 당황하고 막막함을 토로했던 시기였다.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종교시설에서 확진자가 줄지어 발생했고, 이는 신앙생활이 위축되는 원인이 됐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상황에 교회는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하느라 신자들 개개인의 신앙생활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성 바오로 딸 수도회는 갑작스런 신앙생활의 공백으로 방황하는 신자들을 생각했고 그들을 위한 일들을 고민했다.

혜화나무 매니저 김계선(에반젤리나) 수녀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미디어들을 접하면서 사람들은 더욱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것만 찾게 돼 신앙이 삶 밖으로 밀려나는 게 아닌가 우려됐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수녀들과 함께 고민했고, 대면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신앙의 가치를 전할 수 있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철학과 문화, 과학 등 다양한 주제 안에서 신앙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혜화나무 아카데미가 대표적이다. 2021년 3월 시작한 아카데미는 노성숙(로사) 박사의 톨스토이와 함께하는 ‘삶의 의미 탐색’, 김산춘(요한) 신부의 ‘단테 「신곡」 제대로 배워봐요’, 김형수(베드로)·최대환(요한 세례자) 신부의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 읽기’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 밖에 송봉모(토마스) 신부의 ‘순례자 아브라함’, 이진현(라파엘) 신부의 ‘교회사’, 김도현(바오로) 신부의 ‘진화론과 빅뱅’ 강의도 복음과 교회역사를 공부하며 신앙의 저변을 확장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혜화나무 아카데미는 방역수칙을 지켜 지하 1층 공간에서 최소한의 인원이 현장에서 강의를 듣고, 나머지 인원은 인터넷을 통해 수강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지난해 홍보주일에는 ‘릴레이 성경 읽기’로 비대면과 신앙생활, 모두가 충족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지 않도록, 각자 정해진 시간에 혜화나무를 방문한 신자들은 10분가량 성경을 읽고 체험을 나누며 릴레이를 이어갔다. 서울대교구 총대리 손희송(베네딕토) 주교가 시작해 광주대교구 총대리 옥현진(시몬) 주교가 마무리한 이 프로그램에는 이틀간 100여 명의 신자들이 참여해 복음의 기쁨을 체험했다.

혜화나무의 줄기를 상징하는 1층에는 서원과 카페로 꾸며진 쉼과 교류의 장이 마련돼 있다.

2021년 5월 14일과 15일 열린 릴레이 성경 읽기 유튜브 화면 갈무리.

■ 피정과 기도도 랜선으로 함께

비대면으로 소화하기 까다로운 것이 바로 피정과 기도다. 함께 하느님을 바라보고 체온을 나누며 신앙의 깊이를 채우는 여정이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된 상황. 혜화나무는 랜선을 통한 피정과 기도로 신자들과 하느님의 연결고리를 단단히 묶고자 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2020년 12월, 7일간의 랜선 피정 ‘성탄을 기다리며’를 운영한 혜화나무는 안셀름 그륀 신부의 「성탄의 빛」을 읽고 참가자들이 그룹형 SNS인 밴드를 통해 매일 오전과 오후 7시에 마음에 드는 구절을 댓글로 남기고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코로나19로 특히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도 잊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 어려운 상황으로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랜선 9일 기도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6월 예수 성심 성월에는 예수님께 드리는 랜선 5일 피정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활력을 잃은 대학로 거리. 그 중심에 뿌리를 내린 혜화나무는 지난 1년간 고요한 시간을 견뎌냈다. 이곳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간절한 기도소리도 듣기 어려웠지만, 하느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명을 실천코자 했던 성 바오로 딸 수도회 수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움직였다. 그 노력들은 머지않아 값진 열매를 맺고 하느님 사랑의 향기를 널리 퍼뜨릴 것이다.

김계선 수녀는 “지난해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도 대학로에 특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시간을 보냈다면 올해는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하느님을 만나고 빛과 희망을 향해 나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문의 02-6367-0800~2 바오로딸 혜화나무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