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그대에게 / 이순아

이순아(도미니카) 수필가
입력일 2021-12-21 수정일 2021-12-21 발행일 2021-12-25 제 3275호 2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누군가의 죽음이 기쁨이 되는 체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느 날 부고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때 나는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대구까지 문상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바로 상주 신부님께 문자를 드렸다. “신부님, 슬픔을 함께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이미 천국을 사신 분이라 믿기에 평온한 마음으로 기도와 미사로 어머니를 보내드립니다. 제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신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신부님 힘내세요.” 순간 언젠가 써 놓은 ‘그대에게’라는 묵상 글이 생각났다.

‘두고 가라 하지 마세요/ 아무리 둘러 봐도 두고 갈 게 없어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내 것인 게 하나도 없어요/ 마음에 두고 산 게 없어요/ 세상살이 힘겨워/ 가끔 쓸쓸한 미소만 허공에 날렸을 뿐/그건 당신이 필요하지 않잖아요/ 그러나 단 한 가지 당신께 두고 갈 게 있어요/ 사랑! 그분이 제게 주신 사랑만은 두고 갈게요/ 그대! 간혹 살다 내가 생각나거든/ 그 사랑을 꺼내보세요/ 내 영혼이 거기서 활짝 웃고 있을게요.’

내용을 음미하다보니 늘 회원들에게 활짝 웃으시던 작고하신 그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그분은 늘 따뜻한 마음으로 교회에 헌신하신 성모님을 닮은 삶을 사신 분이다. 교우 몇 분과 몇 십리 길을 걸어 공소로 미사를 다니시는 시골 신부님의 고된 여정에 힘이 되고자 오토바이를 사드리면서, 평신도 신심단체인 ‘예수성심 위로의 전교회’를 탄생시키셨다. 매월 첫 금요일 모임을 갖는 월례미사에서 나는 200명에서 많게는 1만3000명에 이르는 신입회원과 회보를 관리하다 그분 곁을 떠났다. 이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늘 나를 딸 같이 여기시며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그분 말씀에 있었다.

그 어머니께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골 본당 신부님들이나 국내외 선교사들이 찾아와 도움을 청하면 미루시는 일이 없으셨다. 즉시 회원들에게 호소하여 기적같이 문제를 해결해 내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바로 그곳이 천국이었다. 이런 기쁨을 함께 누릴 때마다 그분은 내게 말씀하셨다, “도미니카! 나는 기도와 물질로서 어려운 사제들을 돕고 있지만, 언젠가 너는 기도로서 사제들을 돕게 될 것이다.”

그 말씀을 성령의 음성으로 받아들인 것은 그 단체를 떠나고 한참 후였다. 그때부터 성령이 이끄시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골방기도를 시작하게 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이후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하면서 영성공부를 했다. 그러나 날마다 자신을 죽이며 그분을 닮아가기 위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펐다. 때로는 나를 데려가시라는 기도도 했다.

그런 고난의 과정에서 그 어머니의 삶과 내 삶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된 것은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할 수 없다’(로마 11,29)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다. 그러기에 그분은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끝까지 받들고 세상을 떠나셨다. 나 역시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딸 같은 세 자매와 함께 매월 첫 금요일 오후 3시 ‘성직자와 수도자 선교사를 위한 기도모임’을 하고 있다. 이 작은 모임이 그분이 내게 남기고 가신 신앙유산이다. 이런 어머니를 하늘나라에서 뵐 생각을 하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주말편지’를 써주신 필진들과 애독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순아(도미니카)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