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당신의 기척 / 유혜련

유혜련(아녜스) 시인
입력일 2021-10-26 수정일 2021-10-26 발행일 2021-10-31 제 326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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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며칠 전 당신을 만나고 왔지요. 양지바른 그곳에 조용히 잠들어 계신 당신과 아버님, 어머님을 뵙고 오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합니다. 다만, 까맣고 반들반들한 묘석이 아무런 비문 없이 빈 채로 서 있는 게 허전했습니다. 우리 집안의 납골묘에 묘비명으로 쓸 짤막한 글을 지어 보라는 당신 주문에 내가 고심 끝에 한 편 써 내밀자 당신이 아주 만족해 했었지요. 그것을 자필로 써 넣겠다며 매일 붓을 들어 연습하더니, 아직 미흡하다며 자꾸 새기기를 미루더니, 어떻게 그렇게 황망히 가 버리십니까? 기계로 쓴 글씨가 싫다던 당신이었는데, 이젠 어쩔 수 없이 기계로 써서 새겨야 할 모양이에요.

인간은 모르는 게 참 많은 존재죠? 자기가 언제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날지, 떠나서 가게 되는 행선지는 어디일지…. 그런 가장 중요한 것도 모르는 우리가 감히 무엇을 아는 척 교만을 부릴 수 있을까요. 당신을 떠나보내고 내가 어떻게 살게 될지 나는 나의 앞날을 모릅니다. 모든 모름과 혼돈 때문에 자꾸 찾게 되는 건 하느님, 예수님, 성령님, 성모님입니다. 그저 하루하루 기도로써 저는 안정과 힘을 얻고 지혜를 얻습니다.

당신의 급작스럽고 안타까운 선종 이후 가끔, 그 갑갑한 음압실에서 쓸쓸히 죽음의 길을 향해 걸어갔을 당신을 상상하다보면 울컥 울음이 솟구치곤 합니다. 당신의 투병 생활을 좀 더 살뜰히 보살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고 아쉬워 늘 가슴이 저립니다. 더 잘 챙겨 주었더라면 병이 나아서 입원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입원하지 않았더라면 병이 악화되어서가 아니라 팬데믹의 폭풍에 희생되어 목숨을 잃는 황당함은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당신이 계신 곳이 어디일지 나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착하게 살았으니까, 누구보다 속 깊고 이성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으니까, 하느님께서 당신을 험한 데로 보내시지는 않았으리라 위안해 봅니다. 오히려 따스하고 아늑한 주님 품 안에 잘 데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위한 기도는 여전히 필요하겠지요. 매일 지향을 넣어 묵주기도와 위령기도 등을 드리고 있습니다. 내 기도가 산만하고 어설프고 토막토막 잘리기는 하지만, 기도를 드리겠다는 마음 하나만은 주님께서 받아 주시리라 기대합니다. 이 기도는 내가 당신 곁으로 갈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밖에 뭐 그리 있겠습니까. 아, 그리고 하나 더, 착하고 올곧게 살아야겠네요. 당신이 계신 그곳에 갈 수 있으려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이렇게 가르치신 예수님의 어리석은 부자에 관한 비유를 기억하며 너무 아등바등 욕심 부리고 살지도 말고요.

아침저녁으로는 공기가 서늘합니다. 이 집에는 계절 따라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 환한 미소를 건넵니다. 이제 곧 국화가 색색으로 피어 꽃밭을 수놓겠지요. 당신과 함께라면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었을 정원이 아직은 어설프게 펼쳐져 있습니다. 당신의 선종과 이사로 혼란했던 이 해를 보내고 내년 봄이 되면 지금보다는 더 아름답게 꾸밀 수 있을까요? 자주 놀러오세요. 전에 살던 집에서 당신이 좋아하던 나무도 몇 그루 옮겨왔으니, 그 밑에서 쉬었다 가기도 하시고요. 무엇보다 내 어깨를 한 번씩 툭 치고 가주면 좋겠어요. 힘내라고, 잘 지내라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저는 당신으로부터의 그 기척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바람결이든 별빛이든 달빛이든, 아니면 영혼을 울리는 떨림으로든, 그도 아니면 당신이 그토록 나타나 주지 않는 꿈결로라도. 당신의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빕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혜련(아녜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