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아, 날아간 사제성소여! / 오을식

오을식(요한 마리아 비안네) 시인
입력일 2021-10-19 수정일 2021-10-19 발행일 2021-10-24 제 326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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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성당의 마른 의자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보건소에서 약을 받아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뭔가에 이끌리듯 들어간 어두컴컴한 성당.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데 그냥 눈물이 터졌다. 의자 등받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흐느끼고 있는데 문득 인기척이 느껴졌다.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시드니오페라하우스 모양의 캡을 쓰신 수녀님 한 분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고 계셨다. 수녀님이 다감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고해성사가 필요한가요?” 성당에는 난생 처음 들어온 터라 나는 그 말씀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젖은 눈을 껌뻑거리며 주춤거리자 수녀님이 본명을 물으셨다. 나는 담담한 어조로 오을식이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수녀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 교우가 아니시군요. 그래도 마음이 시키면 언제든 와서 쉬어가세요”하고 다독거려주셨다.

내 신앙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스무 살의 청년이 하고많은 곳을 두고 왜 성당으로 가 울음보를 터트렸는지 지금도 설명이 어렵다. 아마 얼마 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되어서일 수도 있고, 폐결핵3기 판정을 받고 시골집으로 내려와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내 가여운 처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날 이후 나는 일삼아 읍내로 나가 성당을 들락거렸다. 그저 텅 빈 성당에 우두커니 앉아 제대 위를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14처를 쳐다보며 고개를 기웃거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성당을 다녀온 날은 이상하게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칭찬이나 위로를 받은 것처럼 마음이 환해졌다.

결핵 완치 판정을 받은 날,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공소로 가 예비 신자 등록을 했다. 그리고 1년 후, 공소회장님을 대부로 모시고 드디어 요한 마리아 비안네로 새롭게 태어났다. 나는 투병생활을 하느라 중단했던 대학입시 준비를 하면서 공소 일도 열심히 도왔다. 초·중등부 교리교사를 맡아 아이들과 교리 지식을 나누고 함께 신앙의 뿌리를 튼튼하게 키우고자 노력했다. 아마도 그 시절이 내 인생 중 가장 신앙적으로 뿌듯하게 성장한 시기였을 것이다.

그즈음 본당과 공소에서는 내가 신학대학에 응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꽤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본당인데도 그때까지 아직 신부님을 배출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출처가 묘연한 소문은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다 결국 우리 집 담장을 넘어왔다. 훗날 결혼을 하게 되면 태어날 아기 이름까지 생각해두고 있던 나로서는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지만 내심으로는 왠지 그 소문이 마음에 들었다.

입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어느 날, 마당에 고추를 널고 계시는 어머니께 다가가 넌지시 물었다. “저기… 어머니, 어머니 아들이 신부가 되려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그 말이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던 듯 갑자기 붉은 고추 하나를 집어 패대기를 치며 버럭 성을 냈다.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해라만, 내가 보기에 너는 죽었다 깨나도 신랑감이지 신부될 그릇은 아니다!”

그날 어머니와 나는 붉은 고추 입회 하에 ‘아들은 차후로 신부가 되겠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대신 어머니는 초파일 불전 출입을 완전히 끊고 성당의 미사 참례에 성의를 다한다’는 모자협정을 맺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성당을 다녀온 첫날부터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가만 보니 신부도 괜찮은 직업 같다. 제대에서 덕담해주고 만세 몇 번에, 밀떡 배급해주면 끝이잖니!” 그러다 내가 일반 대학에 진학해서 마침내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자, 어머니는 사뭇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러셨다. “일반대학을 다니다가 신학대학으로 옮겨서 사제가 된 분들도 많다고 하던데… 그래도 우리 아들은 장가를 가야지, 암.”

아, 그렇게 내 사제성소는 날아갔다. 내 깜냥으로 보아 당연한 결과지만, 나로서는 뭔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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