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첫 작품집 발간한 박영민 작가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1-09-28 수정일 2021-09-28 발행일 2021-10-03 제 326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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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손 여든일곱 나이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6·25때 화상 입어 불편한 몸
60대엔 신문배달하며 생계유지
고난에도 신앙 통해 용기 얻어

6·25 전쟁의 여파로 장애를 가지게 된 박영민 작가가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 작품집을 발간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뒤틀린 검지와 중지 사이에 큰 붓을 끼우고 한 자씩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다.

장애를 가진 박영민(막달레나·87) 작가는 지난 7월 31일 ‘2021 서예·문인화 작품집’을 발간하며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 화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박 작가는 2009년 강원일보사에서 경로당 내 노인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찾아가는 문화교실’에 참여하며 처음 수묵화를 접했다. 선생님과 많은 사람들은 화상을 입어 연필도 잡기 힘든 박 작가의 손을 보고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 작가는 남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연습했고 발군의 실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를 눈여겨본 선생님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복지관에서 그림을, 춘천 가톨릭아카데미에서 서예를 배웠다.

이후 강원일보사가 주체한 ‘장애인 미술공모전’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개인전도 준비했지만 코로나19로 미뤄지다 작품집을 내며 전시의 아쉬움을 대신했다. 작품집에는 그동안 작업한 작품 중 서예 12점, 문인화 29점을 담아냈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면 잡념이 사라지고 자신감도 더 생긴다”며 삶의 의지와 희망을 나눴다.

박 작가의 상처는 6·25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6세 꽃다운 나이였던 박 작가의 얼굴은 포탄 화염에 타들어 갔다. 옷에도 불이 붙어 곳곳에 화상을 입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얼굴이 일그러졌고 손가락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상했다. 성형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당시 기술로 박 작가를 치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금방 현실을 받아들였다.

“고민한다고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제 처지 안에서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죠.”

당시 대부분이 신자였던 마을 분위기에 박 작가는 18세 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원래가 용감한데 신앙 안에서 믿음이 생기니까 더 용기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현재도 본당 구역반장을 10년 넘게 하며 신앙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30대 중반에는 결혼도 하고 박 작가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인 아들, 딸도 낳았다. 하지만 남편은 알코올중독자였다. 술에 찌들어 사는 남편 때문에 결혼 생활 역시 평탄하지 않았고, 결국 남편은 50대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삶의 의욕을 놓지 않았던 박 작가는 60세에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새벽에는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어서 즐겁게 신문을 돌렸습니다.”

그렇게 그는 15년 동안이나 신문 배달을 계속했다.

이처럼 박 작가는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겪었지만, 신앙을 가진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살아온 그의 뜨거운 열정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지만, 온전치 못한 지체로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용기를 낸다면 충분히 살아갈 만한 세상입니다. 제가 작품 활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점입니다. 저를 보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셨으면 해요.”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