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펀펀 사회교리] (74) 원수인 돈을 사랑하자 ⑧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rn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
입력일 2018-06-11 수정일 2018-06-12 발행일 2018-06-17 제 3099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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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적 교류 없는 자선은 무의미
소외된 이들 사정 외면한 채
형식적으로 돕는 일 멈추길
마음으로 품어안고 돌봐야

“베드로씨도 돈만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것이 참 많지 않습니까?”

“옙, 신부님 말씀 듣고 보니 저도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베풀 것이 많은 참 부자인 것 같습니다. 이 시간 이후로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끝으로 다 아시는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떤 부잣집 대문 앞에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라자로’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습니다. 얼마 후 부자도 죽어 저승에 떨어져 고통 받게 되었습니다. 부자가 보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부자가 아브라함 할아버지에게 ‘라자로’의 손끝에 물을 찍어 자신의 혀를 식히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할아버지는 한마디로 거절합니다. 루카복음서 16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두렵고 무서운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거지 ‘라자로’가 부자 집 대문 앞에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누워 있지만 부자는 ‘라자로’를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먹도록 배려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때입니다. 로마 부자들은 음식을 반쯤만 먹고 깨끗한 바닥에 버리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부의 과시였습니다. 식탁에서 떨어진 이 음식은 노예나 거지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에서도 부자들이라면 먹던 음식을 식탁 밑으로 던졌고, 가난한 이들은 이 음식을 먹고 살았을 것입니다. 나름의 자선행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저승에서 부자가 ‘라자로’를 알아보았다는 것은, 부자가 ‘라자로’를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어쩌면 부자는 억울할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듯이 살아왔는데, 왜 자신이 저승에서 고통을 겪어야하는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 당시 가진 자들에게 보내는 준엄한 경고입니다. 그 시대에 만연한 소극적이고 인격적 교류가 담기지 않은 형식적 자선은 무의미하다는 꾸지람입니다. 자, 종기투성이의 ‘라자로’가 여러분 대문 앞에 누워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12에 신고해서 보기 싫으니 치워버리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부랑인이라는 낙인을 찍어 피해 다니겠습니까? ‘그래, 넌 얼마나 열심히 잘 하고 있냐?’라고 반문 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저 또한 여러분과 별 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 드립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만은 내어 쫓기고 굶주리는 이들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는 이런 세상을 꿈꾸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2000년의 긴 세월동안 우리 대문 앞에 누워있는 라자로를 외면해 왔습니다. 이제 돌보아야합니다.”

백남해 신부(요한 보스코·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rn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