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위령성월 특별기고] (상) 위령성월에 생각해보는 장례문화

최하원(그레고리오)rn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상임이사, 영화감독
입력일 2017-10-31 수정일 2017-11-01 발행일 2017-11-05 제 306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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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끝에 사제는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선교 의무를 일깨운다. 하지만 한 치의 틈도 없이 벽을 쌓고 사는 이웃들, 한순간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삭막한 불목의 환경 속에서 우리 바람은 얼마나 가능할까.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쉽게 이해되지 않던 사실 한 가지가 있었다. 잔혹한 박해 속에서, 어떻게 신자 수가 해마다 늘어났느냐 하는 통계의 경이(驚異)다. 그 의문은 신앙선조들의 삶을 추적하면서 풀 수 있었다. 그분들의 전교는 말이 아닌 행동이었으며 표양이었다.

신유박해(1801년) 때, 체포된 윤석춘이라는 분의 공초 기록에 ‘제 어머니께서 “천주교를 배우면 평소 모르는 사람이라도 정이 지친(至親)한 사람과 같아서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구해준다(患亂相求). 너는 형제도 없는 외로운 사람이니 이것을 배워 무방하다”고 하여 믿게 되었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환난상구의 정신은 200년 전부터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 이것이 오늘날의 연령회다. 환난상구의 핵심은 서로 돕는 상부상조, 그 속엔 이웃사랑, 그리고 선교의 의도도 다분히 있었을 것이다.

“댁이나 잘 믿고 천당 가세요!” 말로는 결코 설득당하지 않는 이 불신의 시대, 환난상구, 연령회의 헌신적인 활동에서 그 가능성을 찾을 수는 없을까.

상을 당한 대부분의 상가 가족은, 큰일에 대한 불안 속에서 당황하기 마련이고 연령회의 체계적이고 익숙한 일 처리에 신뢰하고 의지하게 된다.

나는 1959년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본당 신부님(서울 세종로본당, 고 박귀훈 신부)께 인사드리러 갔다가 “잘됐다. 내일부터 연령회 해라!” 해서 졸지에 연령회 봉사를 시작했다. 당시 연령회원들은 노인 중심이 아닌 청년들이 주축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연령회에 대한 향수는 늘 잊히질 않아, 죽기 전에 꼭 한 번 더 했으면 했는데 2011년 1월 어느 날, 신부님이 미사 끝에 잠깐 보자시더니 연령회를 좀 맡아 줄 수 없겠느냐고 하신다. ‘원! 이렇게 기쁠 수가…’

다시 시작한 첫날, 꼭 52년 만에 상장예식서의 연도를 바치며 놀라웠던 것은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현대적 악보로 채보(採譜)되었나’ 하는 기쁜 놀라움이었고, 다른 하나는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떻게 일자일획도 변함없는, 그래서 무슨 내용인지 아직도 뜻 모를 가사의 구절들이었다. ‘왜 누구나 알기 쉽게 바꾸지 못하는가’ 하는 우울한 실망감이었다.

연령회 활동을 하면서 개선되었으면 하는 문제점들을 지적해 보려고 한다.

1. 연도 났다! 첫날

장례예식 첫날, 기본적인 장례 준비를 마치고 연도가 시작된다. 어색한 참여와 생소한 음률에, 처음에는 서먹해 하나 차츰 서투른 대로 따라 하다가 성인호칭 기도의 후렴쯤에 가면 단순한 곡에 익숙해지면서 우렁찬 합송이 되고, 하나 된 기도의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답답한 것은 이 구절 저 구절,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사실 연령회원들도 잘 모르는 어려움을, 함께하는 이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느낄 것인지, 조심스럽고 불안하다. 거의 외우다시피 익숙한 내용이지만 그 뜻을 바르게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연도는 구약의 시편(詩篇)에서 따온 것이지만, 시대에 따라 또는 환경에 따라 그 표현 방식 또한 변화할 수밖에 없고 또 변화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연도는 노래하는 기도다. 시편을 공부한 사람만이 가능한 기도, 교육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기도라면 문제다.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쉬운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 33항은 ‘“우리는 늘 이렇게 해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안이한 태도를 버리고 관례와 전통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복음의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연도는 왜 굳이 시편만이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신앙선조들의 애환이 서린 가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벽의 「천주 공경가」 최양업 신부의 「사향가」 정약전의 「십계명가」 등…. 개발해서 연도 음률에 다듬어 맞추면 우리 정서에 잘 어울릴 훌륭한 내용들은 너무나 많다.

“어화 우리 교형네여, 우리 본향 찾어 가세, 동서 남북 사해 팔방 어느 곳이 본향인고 금세 만복 다 받은들 천당 복에 비길소냐, 금세고초 다 받은들 지옥고에 비길소냐!”

청년 연령회 시절, 운구 버스 안에서나 장지에서 불렀던 위령성가가 최양업 신부의 「사향가」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연도는 우리만의 고유한 세계적 자랑거리임에 틀림없다. 그 특유한 가락은 누구에게나 신비한 슬픔과 애원을 느끼게 한다.

최하원(그레고리오)rn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상임이사,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