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구자명의 마음소풍] 그리운 또 하나의 고향

입력일 2010-06-23 수정일 2010-06-23 발행일 2010-06-27 제 2703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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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내 즐거운 낙원이여 너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천안함 희생자 유족의 절규와 지방선거의 떠들썩함이 귓전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맞닥뜨린 월드컵의 열기가 민망하리만치 뜨겁다. 아픔도 슬픔도 잘 잊는 우리 국민들은 남북한 긴장국면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적인 스포츠 제전에서 북한의 선전을 바라는 동포애를 숨기지 못한다. 나 또한 며칠 전 새벽 북한-브라질 경기를 보느라고 잠을 설친 후, 아침에 일어나 그 경기에 대한 세계의 반응을 보느라 인터넷부터 뒤졌다. 천리마 축구단이 선전한 것에 대한 호평을 접하면 우리 태극전사들이 칭찬받는 것 못지않게 기분이 좋다. 우리는 어쨌든 한 민족이고, 60년 전까지만 해도 한 나라 국민이 아니었는가!

한국 국적을 지닌 채 재일교포로 살며 북한에서 뛰는 정대세 선수가 경기 전 북한 국가가 울리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노라니 내 눈에도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나는 분단 전 한반도를 생각하면 마치 세계 각지에서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던 유대인들이 조상들의 땅 ‘시온’을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정서에 빠지는 것 같다. 구(舊) 가톨릭 성가 중에 ‘예루살렘 내 복되고 즐거운 낙원이여 너를 생각할 때면 마음 답답하다’고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다. 분단 현실에 대한 내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노랫말이다.

실제로 나는 내 부모님의 고향인 이북이 내가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보다 더 고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릴 적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하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 마음속에 오롯하게 그려지는 그곳은 경치 좋고 인심 좋고 물산 풍부했다는 동해안 제일의 미항(美港), 원산이다. 그리 좋은 곳에 살았던 내 부모님의 가족은 친족만 해도 양가 합해서 십 수 명에 이르는 번성한 집안이었더랬는데, 지금은 동란 직후 월남하신 이모님 한 분 외에 아무도 생사를 알길 없는 고혈(孤孑)한 집안이 됐다. 더욱이 부모님 고향이 개성인 남편의 가족 상황 또한 다르지 않아, 명절 때 양가가 다 모여도 여섯 명밖에 안 된다. 그래서 이북의 ‘고향’을 더 그리는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6?25 즈음해 나는 일종의 향수병을 앓는다. 올해는 한국과 북한이 나란히 월드컵에서 뛰는 것을 보니 망향의 정이 더욱 솟구친다.

그럴 때면 내가 애모(愛慕)의 정을 한없이 느끼며 떠올리는 ‘이북 가족’이 있는데, 다름 아닌 나의 큰아버지다. 애모(哀慕)가 아닌 애모(愛慕)라 표현하는 것은 그분이 비록 돌아가셨지만 그 영혼은 늘 가까이서 수호신처럼 나를 지켜주신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분은 내 친족이기 이전에 ‘현대 순교자 38위 시복시성’ 심사대상에 오른 ‘가경자’이시다.

60년 전 이맘때 평양의 감옥에서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가운데 순교를 대비하며 기도하던 분들이 계셨는데, 그 중에 나의 큰아버지 구대준 가브리엘 신부님도 계셨다. 그는 1949년 회령본당으로 발령받아 떠난 지 수개월 만에 수녀원 묵상을 지도하러 원산에 왔다가 그 길로 북한정권 정치보위부에 납치돼 평양으로 호송됐다. 독일인 신부?수사들과 함께 평양 감옥에 수감돼 있던 그는 1950년 동란 초기에 북한군이 북만주 쪽으로 후퇴하면서 수감자들을 호송해 가는 중에 숨을 거두었으리라 추정되고 있으나, 자세한 진위는 교회 당국의 조사를 통해 밝혀지리라 믿는다. 선후배 및 친구 사제들과 가족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더할 수 없이 겸손하고 온유한 덕성과 함께 선지적 지혜를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동료 사제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사제는 너무나도 처참한 상처투성이인 주님의 살을 만들고 그 참혹한 피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겠니?”

이 순수하고 성스러운 영혼이 나의 친족이라는 사실은 내게 더없는 ‘조상 빽’이 아닐 수 없다. 또다시 난망의 국면에 놓인 남북관계를 생각하며 그분께 기도 중에 졸라본다. 머지않은 앞날에 월드컵에서 ‘한반도 선수단’이 뛰는 걸 좀 보게 해 주실 수 없겠냐고.

※ 그동안 집필해주신 구자명 님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7월 4일자부터는 소설가 안영 님의 칼럼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