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구자명의 마음소풍] 부부의 진화, ‘오해’에서 ‘이해’로

입력일 2010-05-12 수정일 2010-05-12 발행일 2010-05-16 제 2697호 2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오가는 정이야 해묵은 된장맛 하지만 이제 우리의 만남은 영원에 이어졌다
우리 집 안방에는 한 작고 시인의 시를 적은 서예 편액이 걸려있다. 시 제목이 ‘노부부’인데,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면서도 무심히 지나치다가 간혹 한 번씩 내 눈길이 슬며시 가서 머무는 대목이 있다. ‘아름다운 오해에서 출발하여 참담한 이해에 도달했달까’하고 시작하는 첫 구절이 그것이다. 오랜 세월 그 시를 보면서 그 구절은 내 안에서 때마다 다른 반향을 일으켰다.

가령 부부싸움을 하고난 직후에 그 시구를 보면 이런 마음이다. ‘흥, 그렇지. 오해란 게 어차피 영원할 수 없잖아. 콩깍지 벗겨지면 참담할밖에.’ 그러다가 감정 수습이 좀 되고 서로 화해의 여지가 보이기 시작하면 마음은 이렇게 바뀐다. ‘그래,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문제였는데 새삼 난리 칠 필요가 뭐람. 오해한 적도 없으니 참담해 질 것도 없지.’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화해가 이뤄지고 나면 그 시구는 내 마음에 또 이렇게 속삭인다. ‘아무리 참담해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게 아름다운 오해에 머무는 것보단 발전적인 관계야.’

이처럼 늘 가까이 대하고 나름대로 변주된 해석을 시도하는 이 작품의 저자는 실제 그 배우자와의 관계가 어떠했을까? 문학작품의 애독자는 저자의 사생활에 대해 이런 식의 궁금증을 갖게 될 때가 있는데, 저자의 자녀라 할지라도 그 궁금증은 늘 미답의 영역으로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아버지의 문학총서가 완간됐다. 에세이를 엮은 편에 보니 어느 문우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의 흥미로운 고백이 나와 있었다. 거기서 그는 ‘다음 세상에서 마누라쟁이하고 다시 연분을 맺을 지는 좀 생각해 볼 문제’라고 주변에 토로하고 다녔던 자신에 대해 일편 가책과 반성을 보이면서도, ‘지금도 나를 추궁하면 별차 없이 표현할 것’이라며 자조하고 있었다. 자식으로서 이 이중성이 좀 당혹스럽게 느껴졌지만, 한편 같은 창작인의 입장에서 시인 아버지를 이해하려 들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인인 그가 자연과학 전공자인 의사 아내와 사물을 대하는 시각 및 성향에서 극복하기 힘든 차이를 느꼈을 수도 있었으리라.

이에 비해, 분야는 다르지만 창작인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나와 남편은 좀 더 유리한 입장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이학 분야종사자답게 침착하고 안정적인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남편과의 대립을 조용히 비켜가거나 최소화시켜 살았다. 자식들은 부모가 부부싸움 같은 것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지냈다. 반면 나는 부부 갈등이 생기면 나보다 감성적인 화가 남편에 선수를 쳐 싸움을 걸고 든다. 그래놓고 남편이 열을 받아 폭발할 지경에 이를 때쯤 저 혼자 데탕트 무드에 들어가 ‘참담한 이해’의 미학을 들먹이며 휴전을 선언한다. 이러니 남편은 한 판 승부의 재미도 못 본 채 링을 내려와야 하는 부부싸움에서 매번 찜찜한 기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그는 내가 웬만큼 걸고 들어도 잘 응하지 않는다. 혼자 나가 한 잔 하든가 해서 알아서 삭이고 들어온다.

젊은 시절, 격렬한 부부싸움 끝에 어렵게 화해가 이뤄지고 나면 축제의 시간처럼 한껏 행복해 지곤 했던 기억이 떠올라 이따금 그것이 그립기조차 하다. 하지만 나도 남편도 이제는 아름다운 오해에서 참담한 이해로간다기보다는 처음부터 별로 아름다울 것도 없지만 참담할 것도 없는 이해를 추구하는 가운데 가능한 한 대립을 피하고자 한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아름다운 오해란 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으며, 착각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또한 참담한 이해란 것은 이해라기보다 체념에 가까운 것으로 참된 의미에서 이해라고 할 수가 없다. 부모님도 실은 그것을 일찌감치 터득하시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시의 결미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 지으신 걸 보면 분명 그러셨으리란 생각이 든다. ‘오가는 정이야 그저 해묵은 된장 맛 / 하지만 이제사 우리의 만남은 영원에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