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구자명의 마음소풍] 찰시(察施)에 대한 생각

입력일 2010-05-06 수정일 2010-05-06 발행일 2010-05-09 제 2696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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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필요를 알아서 돕는 쌍방찰시는 어려운 문제를 의외로 쉽게 해결하곤 한다
뭐 하나 되는 일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석가모니를 찾아갔다. 그가 자신의 불운을 호소하자 석존은 다음 일곱 가지 보시(布施)를 행해 습관이 붙으면 행운이 따르리라 일러주었다.

첫째,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 둘째, 칭찬이나 위로 등 말로써 베푸는 언시(言施). 셋째,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는 심시(心施). 넷째, 호의를 담은 눈으로 상대를 대하는 안시(眼施). 다섯째, 남의 짐을 들어주는 등 몸으로 때우는 신시(身施). 여섯째, 때와 장소에 맞게 자리를 양보하는 좌시(座施). 마지막으로, 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돕는 찰시(察施)가 그것이다.

요즘 들어 생각대로 풀리는 일이 별로 없는 필자는 불가(佛家)의 이 가르침을 떠올리며 가능한한 그대로 실천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다른 보시는 그런대로 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곱째 것, 찰시가 영 자신이 없다.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서 구체적으로 알아도 상대방 마음에 들게 도움을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하물며 짐작해 필요한 도움을 주기라니! 말이 쉽지, 독심술을 하거나 도인급 현자가 아니고서야 결코 만만히 여길 일이 아닌 것이다.

때론, 돕는답시고 한 행동이 오히려 상대방에게 심적 부담만 안겨주고 전혀 보탬이 안 되거나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니 찰시란 것이 아무나 행할 수 있는 덕행은 아닌 듯하다.

찰시가 얼마나 조심스러운 것인지 얘기하다 보니 이슬람권의 우스개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아주 못 생긴 여자가 시집을 와서 첫날밤 얼굴을 가렸던 베일을 벗으며 신랑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이 집안에서 베일을 벗고 대해도 될 사람이 당신 말고 또 누가 있나요?” 신랑이 당황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아, 내 앞에서만 말고 다 괜찮소.”

이 경우, 색시가 다른 식구들 앞에서는 답답하게 베일을 쓰고 있다가 오직 신랑 앞에서만 애정과 정절의 표시로 베일을 벗었다면 신랑은 괴로워도 계속 참아야 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새색시의 용모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는 식구들한테 자기 불만을 이해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 여자는 신랑에게 직접 물어봤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남자 입장에서 하는 얘기고 여자 입장에서는 얘기가 또 달라진다. 신랑이 색시의 마음을 헤아려 그녀의 용모 콤플렉스를 다독여 주는 지혜를 발휘했더라면 어떤 얘기가 오갈 수 있었을까? “당신 편한 대로 하구려. 내 앞에서든 누구 앞에서든 꼭 벗어야 할 필요는 없소”라고 신랑이 말했다면, 자기 용모가 어떤지 잘 아는 색시는 눈치껏 알아서 얼굴가리개를 쓰고 벗을 때를 판단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쌍방 찰시를 통해 난처한 문제가 의외로 쉽게 해결되는 것을 우리는 예기치 않게 경험하곤 한다.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쌍방 백안시를 일삼는 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쌍방 찰시를 어디 있는지 모를 이상향 ‘샹그릴라’에서나 행해지는 풍습처럼 받아들일 것 같다. 필자부터도 그랬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을 뿐, 대체로 회의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체험을 통해 그것이 별로 어렵지 않게 이뤄질 수도 있는 일이라는 발견을 했다.

어느 날 친구 하나가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전화로 알려왔다. 필자는 바쁘기도 하고 귀찮단 생각도 들었지만 딱한 처지의 그를 모른 척 할 수가 없어 작은 일 한 가지를 해결해 주리라 속으로 마음먹었다. 해결한 일의 결과를 건네주러 만나니 그는 청하지도 않았는데 필자가 마침 하고 있던 작업에 필요한 자료를 시간에 쫓기는 필자를 위해 대신 찾아가지고 나타난 것이었다.

서로의 필요를 헤아려 알아서 서로를 도와주는 쌍방 찰시가 일어난 것이다. 샹그릴라는 생각보다 그리 먼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